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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를 하기는 참 쉽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지레짐작과 단편적인 정보들의 조합이면 훌륭하게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으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비명은 다수의 합리적 의심 아래에 쉽게 스러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글씨는 글을 이루고, 글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글씨를 잘 쓰는 법, 그 글씨를 잘 쓰기 위해 펜을 잡는 법 따위를 엄격하게 배운다. 그다지 엄하지 못한 집 안에서 자란 나는 펜을 대충 잡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엉망이 글씨체를 가지게 되었다. 매우 지저분한 한글 글씨체를 가지게 된 나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자 인생 새로 시작하는 거야. 나는 한글을 포기하고 영어로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알파벳 쓰는 법을 정석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그 다짐은 a를 정자체로 쓰다가 영어 선생님께 a는 필기체로 쓰는 게 상식이라는 꾸지람을 들은 이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영어 글씨체 마저 필기체와 고딕체, 로만체가 섞여서 아주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영어 선생님은 가끔 수업이 끝나면 나를 불러서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손으로 쓴 가정통신문을 워드로 옮겨달라고 그랬다. 그 선생님은 정보화 시대에 걸맞지 않게 워드프로세서 사용법을 알기는 커녕 타이핑 조차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분당 700타의 타자 실력과 상공회의소 인증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보유한 나는 까다로운 전자제품을 분해할 때 필요한 T6 드라이버만큼이나 적격인 도구로 보였을 것이다. 무척이나 순종적이었던 나는 아무런 불만 없이 - 학교에서도 컴퓨터를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 수많은 가정통신문을 타이핑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진로지도 계획서 같은 걸 타이핑하라고 시켜서 타이핑할 때였다. 여기저기서 스크랩한 자료가 수십장이었고 그걸 다 타이핑하려면 10분의 쉬는 시간에는 다 처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어 선생님께 이거 다 못 치겠다고 다음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때 와서 마저 하겠다고 말했더니 자기가 이야기 해놓을 테니 다음 시간 수업을 빠지고 이걸 계속 치라고 했다.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커다란 게 꿈틀해서 '저는 공부를 하러 온 학생이지 이런 거 대신 치러 온 일꾼이 아닌데요?'라고 말하고는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영어 선생님은 나를 다시 부르지 않으셨다.
그다음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그 영어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했다. 물론 숙제를 빠뜨리거나 하지 않았던 나는 당당하게 숙제를 펼쳐놨는데 영어 선생님이 내 숙제를 보더니 앞으로 나가라고 그랬다. 아니, 빠짐없이 다 했는데 왜? 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갔더니 나를 숙제 안 한 애들과 똑같이 두들겨 팼다. '니가 아무리 컴퓨터를 잘한다고 그래도 사람이! (퍽!) 글씨를! (퍽!) 제대로 (퍽!) 써야지! (퍽!) 니가! (퍽!) 그러면! (퍽!) 똑바로 (퍽!) 못 살아! (퍽!) '
아, 사람은 글씨를 잘 써야 하는구나. 안 그러면 인생이 엉망이 되어버리는구나. 저렇게나 힘들게 스윙을 하시면서 주장하셨으니 새겨들어야지. 그런데 이 글씨체를 어떻게 고치지? 라는 의문에 명확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시중의 예쁜 손글씨 교재들은 아무리 열심히 따라 해도 다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나는 결국 글씨를 쓸 필요가 없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거의 글씨를 쓰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개발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탭과 스페이스의 묘한 차이점에 대해서 고민할지언정 내 글씨체가 읽는 사람의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엉망이라는 사실에 고민하지는 않게 되었다. 보여 줄 일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손글씨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트와 바이트, 유니코드와 스트링의 세계에서 놀다가도 어쩔 수 없이 손글씨를 써야 할 때가 있다. 편지를 써야 할 때. 종이로 된 편지는 프린트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써서 줘야 한다는 뿌리 깊은 확신은 종이 없는 사무실 시대를 사는 나에게도 똑같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카드나 편지를 쓸 때마다 내 끔찍한 글씨체를 깊이 혐오하고 직시할 수 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라는 진심이 담긴 글도 내 글씨를 만나면 지지지지진시임으로추카드리어요오오오오 정도의 느낌으로 읽히게 되는데, 이래서야 도통 마음을 전할 수가 없다. 다들 그랬다. 아무리 악필이어도 정성을 담아서 쓰면 깨끗하게 쓸 수 있다고. 아니, 글자 하나하나를 서예 하는 느낌으로 쓰면서 어떻게 3장의 편지지를 채우려고? 결국 적당히 노력하는 선에서 글씨체를 정리하고, '그래. 그래도 알아볼 수는 있게 썼잖아'라며 애써 위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서툰 글씨체로 쓰인 편지에 담긴 글은, 그 전후의 사정과 해석을 담으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뒤틀리고 끊어지고 깨어진다. 단순하고 담백한 이야기는 현실에 부딪히며 복잡한 이야기가 된다. 그래. 남의 이야기를 하기는 참 쉽지. 남의 현실은 나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니까 참으로 심플하고 깨끗한 해석을 담을 수 있거든.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그렇지 못하다. 나의 엉망인 현실덕분에 나의 엉망인 글씨체에 어울리는 나의 엉망진창인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 영어 선생님이 옳았나봐. 글씨를 처음 쓰기 시작했던 시절 부터 그려온 30년짜리 큰 그림이 완성되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게 되어버렸는데, 그 사실이 가끔은 소름 끼칠 정도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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