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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동기부여의 미학

June 2019. 2. 10. 13:13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 아무것도 못 하고 꼼짝 않는 사람을 비하하는 멸칭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동기(Motivation)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동기는 자연 발생하거나 자가발전하는 것이 아닌지라 끊임없이 소모되고 또다시 채워 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사람은 버드런트 러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료 공급이 끊겨버린 소시지 기계만큼이나 무가치한 쇳덩어리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무엇이 사람을 침대의 중력을 거스르고 두 발로 땅을 딛게 만들어서 사람답게 해주는가? 동기부여는 그렇게 순수하고 단순한 논제가 아니라서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곤 한다. 설령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동기를 가져오곤 하니까.

마감. 마감은 정말 훌륭한 동기부여 수단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 정해졌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정해진 시간에 끝내지 못하면 나에게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불이익의 크기에 따라서 우리는 다른 정도의 동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소기업의 사장은 자기가 좀 늦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 그거? 미안. 바빠서 못 봤네. 언제까지 해주면 돼?' 같은 말을 달고 살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칼같이 지키는 건 연체이자가 폭탄처럼 불어날 수 있는 대금상환만기일 같은 거겠지.

음악. 인류의 오랜 친구. 잔잔한 음악은 사람을 잔잔하게 만들어주고, 신나는 음악은 사람을 신나게 해줄까? 어떤 음악이든 포함하고 있는 리듬감은 축 늘어져 있는 사람에게 일정한 박자를 부여해주고, 규칙을 만들어준다. 이 음악은 1분에 120번 쿵쿵거리니까 당신도 초당 2번 발걸음을 옮기라고. 가사는 또 어떨까. 음악을 음악으로 듣다가 그 음악의 메시지가 자신의 감정과 동기화되는 순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묘한 위로감을 받게 된다. 역시 음악은 인류의 오랜 친구가 맞다. 뭐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친구.

희망. 나는 잘 될 거야.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이제 행복할 거야. 라는 그런 종류의 희망들. 지금 하는 일을 잘 해내면 이후에 달콤한 보상이 따라올 것 같다는 그런 생각들.  치과에 갔다 오면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든지, 논문을 다 쓰면 학위를 받을 수 있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 있다. 희망이 있으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길이 보이니까 사람은 용기를 낼 수 있다. 그 희망이 자신을 배신하여 용기를 땅바닥으로 추락시키기 전까지는.

증오. 나는 반드시 잘 될 거야. 라는 감정에서 희망과 증오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증오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다. 특별한 대상이 있고, 특별한 사연이 있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가.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던 어린 시절, 잔챙이들이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다짐한 것이 있었다. 아, 나는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고, 엄청 커다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저 치들이 무릎 꿇고 제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당신의 능력을 나누어주라고 빌게 하고 싶다고. 물론 성공하지는 못했다.

사랑.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 사람이 지금까지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 동기부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센트룸 같은 존재. 만약 사랑이 알약 형태로 판매될 수 있었다면 인류는 진작에 리만가설도 풀어냈을 것이다. 물론 부작용에 주의해야겠지만. 반드시 매뉴얼을 먼저 읽어볼 것.

후회. 그렇게 하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는 이렇게 해야지. 라는 동기를 가져온다. 물론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 한정이지만. 후회는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사람이 아무것도 못 하도록 만들 수도 있으니 이것은 동기부여에서는 일종의 마약성 진통제 같은 처방이다. 반드시 친한 친구와 상담한 후 후회할 것. 물론 높은 확률로 그 친구는 너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어. 라고 말해주겠지만.

죽음. 이렇게 저렇게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한 번뿐인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 존재 이전의 나와 존재 이후의 나에 대해서 고민해 볼 것.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빅뱅과 빅 프리즈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나를 지배하고 있는 커다란 무기력함을 매우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 아득한 스케일이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동기부여 수단을 검토해봤음에도 움직일 수 없을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 감정도 가지지 말고 그냥 시계의 초침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시간만 흘러가고 나는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좋다. 내 숨결이 주변 공기를 더럽히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다. 죄책감 가져야 할 일은 그것보다도 훨씬 많으니까.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결국 밀려들어 오는 무언가들이 나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든다면. 그때 움직여서 뭐라도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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