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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깊게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그대의 매력을 더해줄 것이니. 원숙하고 풍부한 영혼을 자랑할 수 있게 만들어줄 테니. 사려 깊고, 배려 깊고, 든든하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보이게 해줄 테니. 그러니 보통은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그 사람의 깊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 나이를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얕은 생각 속에 즉흥적으로 살아온 30년과 깊은 생각 속에 주의 깊게 살아온 20년 중 어떤 사람이 더 깊이 있는 사람일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사람의 본질은 생각이라는 것이니까.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연습을 한다. 다르게 생각해보는 연습도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피드백을 듣기도 한다. 그저 일시적인 상황과 표면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의연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영혼이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토목공사에 공을 들인다. 깊게 깊게 파야지.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하면 쉽게 무너지니까.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생각이 깊은 것과 많은 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다. 생각이 많은 것은 그 사람을 불완전하게, 매력 없게, 불안하게, 믿을 수 없게 만들어준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깊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잔생각과 잔걱정에 휘둘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이룰지 모르겠지만 그건 다 자업자득이니 벌 받는 기분으로 불면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맞다.
아주 가끔,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생각이 많아져서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이 시기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가도 그 다짐이 희미해질 무렵이면 여지없이 다가온다. 어떻게 살아갈까 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죽을까에 이르기까지 인생 다방면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어마어마한 가짓수의 생각들은 마치 전주 한정식집의 7천 원짜리 백반을 보는 듯이 다채로우나 별다른 영양가는 없다.
생각의 깊이가 곧 매력의 깊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생각이 깊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싶어 했다. 그러면 나의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줄 테니. 그렇다면 나도 기어코 나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던 매력 중 하나 정도는 자랑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은 심정으로 나의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하지만 문제점이 너무 많아서, 이내 또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더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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