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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You Owe Me

June 2019. 3. 30. 19:47

핸드폰의 상태 바에 떠 있는 편지 모양의 아이콘을 보면서 생각했다. 모바일 그룹웨어는 정말 대단한 기술이 아닐까. 회사 내부에서 메일과 결재, 소스코드와 배포본, 시시한 잡담과 중대한 공지가 왔다 갔다 하는 업무용 네트워크는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듯한 세심한 정보보호의 의지에 힘입어서 매우 강력한 관문과 방화벽으로 격리되어 있었다. 순수한 의도로 직원들의 24시간 업무를 도와주기 위해 핸드폰에 설치할 수 있는 그룹웨어를 만들어서 배포했을 때 회사의 고민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업무용 핸드폰을 모든 직원에게 지급해주기에는 열정이 조금 부족했는지 개인 소유의 휴대폰에 그룹웨어를 설치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사내망이 아닌 보통의 인터넷망에서 사내망까지 도달하는 길이 절대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솟아날 구멍을 찾는 심정으로 많은 엔지니어가 노력한 결과 우리는 개인의 휴대폰에서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업무 메일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 이 메일을 보낸 사람이 메일 발송 버튼을 눌렀을 때, 메일 서버는 메일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에 수신자는 나로 기록이 되어 있었을 것이고. 아마 내가 메일함에 접속해서 메일 목록을 요청했다면 서버는 수신자가 나로 기록된 메일들을 쿼리해서 보여줬겠지만, 요즘의 적극적인 메일 서버는 내가 접속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나에게 매일매일 메일이 왔음을 고백해줬다. 메일이 발송되었을 때 이어지는 온라인(Online) 로직이었을까? 아니면 일정 주기로 알림이 발송 안 된 메일을 찾아서 알림을 보내는 배치(Batch) 로직이었을까? 메일 서버 개발자가 아니었던 탓에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나에게 메일을 보내면 서버는 도착 알림을 위한 로직을 깨워냈을 것이다. 이 로직은 아마도 그룹웨어가 배포되기 시작했을 무렵 추가된 코드에 의해서 내가 모바일 그룹웨어를 설치하고 있는 사용자임을 알아냈을 것이고. 아마도 나에게 안 읽은 메일이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큐에 등록되었을 것이고, 그 큐는 내 앞에 쌓인 알림 들을 보내고 나서 쉬지도 못하고 내 메일 알림 메시지를 큐에서 꺼내서 알림 서버로 전송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 알림 서버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사내망에 접속하지 못하는 내 핸드폰에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려줄 것. 그리기 위해서는 사내망 내부에 있는 알림 서버가 외부에 있는 푸시 서버와 통신을 해야 했다. 물론 그 사이에 네트워크야 어떻게든 연결은 되어 있었겠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보안 장비들의 관문이 꽤나 많았을 것이다. 아마도 패킷은 유비를 향해 돌아가는 관우의 심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쨌든 내 메일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무사히 외부망에 전달해준 패킷의 노고 덕에, 푸시 서버는 내 핸드폰에 설치된 푸시 에이전트와 통신을 시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번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에이전트가 죽어 있는 상태여서 구글의 도움을 받아서 에이전트를 부활시켰을까? 내 핸드폰 내부에서 어떤 투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거대한 시스템 곳곳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고민이 담긴 많은 로직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던 덕분에 나는 비행기를 타거나 비행기 모드를 켜지 않는 이상은 언제 어디서라도 예외 없이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슬금슬금 펼쳐진 유비쿼터스의 은총에 결과적으로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생각해보면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메시지는 많다. 이번 달 카드값 얼마가 결제될 예정입니다. 미안한데 돈 좀 빌려주지 않을래? 안녕하세요, 문의할 게 있는데요. (광고)회원님을 위한 엄선된 쇼핑 정보를 보내드립니다. 블로그 팔지 않으실래요? 짜증나는 메시지의 도착이 택배 도착보다 잦은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은 더 이상 설렘을 가져다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설레지 않는다고 해서 기대까지 다 접어버리면 불현듯 찾아올 행복함을 놓칠지도 모르니까. 나는 다시 한번 울리는 진동에 속아보기로 했고, 핸드폰을 들었고,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을 봤고, 메일을 열어봤고,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반사적으로 답장 버튼을 누르고 안녕하세요 라고 치면서 다음 메시지를 고민해봤다. 고민과 고민의 사이에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읽었던 메일 내용과 지금부터 쓸 메일 내용 때문에 빨라진 것 같았다. 카페인 탓은 아니겠지. 새벽 한 시는 커피 마시기에 적합한 시간이 아니니까. 잠시 숨을 고르면서 다음 문장을 고민했다. 지금 머릿속에 떠도는 문장들을 그대로 치고 메일을 보내버리면 대형 사고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 10분쯤 지나자 심장 박동이 안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른 새벽의 차가운 기운이 흥분한 머릿속을 차갑게 식혀주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한결 차분해진 기분과 온화한 마음으로 다음 문장을 칠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보내주신 헛소리는 처음 듣는데, 어떤 미친 새끼가 그런 소리를 했죠?

5분쯤 더 마음을 식히고 나서, 혹시나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발송 버튼이 눌리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세심하게 메일 내용을 지웠다. 새벽 1시라는 전략적인 시간에 보낸 메일에 새벽 1시 15분에 답장을 보내는 것은 훌륭한 전술적인 대응이 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길 수는 없는 싸움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어제 새벽에 보내신 개소리의 근원이 궁금합니다'라고 문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룹웨어를 그대로 닫아 버렸다. 그리고 6년 전에 자주 느꼈던 두통이 슬금슬금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너 거기 있었구나. 죽은 줄 알았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왜 모든 것은 엉망이 되려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을까. 어느샌가 결정권 없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과거의 후회들을 뒤져서 미래의 우려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뒤에서 내 욕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다 보이는 거짓말이 위계 속에서 진실성을 가져버리는 상황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러니까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을 인용하여 내가 절대 원하지 않던 결론을 내고 통보하는 저런 메일도 보낼 수 있는 거겠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인걸 알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겠지.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지적하면 버릇없는 사람이 되는 건 나니까.

옛날 생각을 하기에 좋은 시간이었기에, 옛날 생각을 했다. 왜 항상 이런 식일까?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고 있었더니, 왜 자기네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리지 못해서 그렇게 안달인지, 왜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내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뻔뻔한 메일을 보내는지. 다시 메일함에 들어가서 지난 2일간 왔던 메일 제목들을 쭉 스크롤해봤다. 나한테 짜증 나는 일이 10개는 더 있고, 짜증 나는 메일이 100개는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방금의 상황이 조금 사소하게 느껴졌고 작금의 상황이 조금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가 이내 불행해졌다.

불행함이 조금이라도 배출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한숨을 푹 쉬고는 모니터에 떠 있던 과제창을 내렸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문의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내고, 원격 데스크톱 프로그램을 기동 해서 회사 서버에 접속했다. 아무래도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근거를 갖춘 답장을 보내야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근거와 진실을 담은 답장을 보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원격 데스크톱을 통해 회사 업무 환경에 접속하는 일은 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음원 스트리밍 기술은 정말 대단한 기술이 아닐까. 사실 지난 몇 시간 동안 계속 음악은 흘러나오고 있었겠지만, 그 무심한 소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핸드폰에 설치된 음악 앱은 스트리밍 서버에 다음 음악의 재생을 요청했을 것이고, 미국 어딘가에 위치한 서버는 요청한 음악을 찾아서 잘게 쪼갠 뒤 다시 태평양 너머로 패킷을 보냈을 것이다. 그 패킷을 받은 앱은 시간 순서대로 패킷을 적절히 조합한 뒤, 재생을 시도할 만한 수준이 되었을 때 운영체제에 음악의 재생을 요청했을 것이다. 운영체제는 그 음원을 디코딩한 뒤 현재 설정된 출력장치로 소리 정보를 보냈을 것이고.

하필이면 내가 핸드폰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해둔 덕에, 그 소리는 조금 더 복잡한 여행을 해야 했다. 음원 정보는 다시 블루투스 코덱으로 변환되어서 2.4 GHz의 무선 신호로 내 이어폰까지 전달되었을 것이다. 내 방안에 2.4 GHz 신호는 포화상태였지만 다행히도 혼선 없이 도착한 음원 정보는 이어폰에 내장된 DAC에 의해서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된 뒤 전기 신호의 형태로 진동판을 울렸을 것이고, 그 진동판의 울림은 공기를 흔들고, 그 공기의 흔들림은 고막을 울리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막의 울림은 달팽이관을 거쳐서 청신경으로 전달되어 뇌에 음악을 인식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그 뇌가 다른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음악을 무시하고 있었지만 아주 약간의 여유가 생긴 지금은 그 음악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 새삼스러운 인식 속에서 유난히 잘 들리는 가사 한 줄에 홀린 듯이 손을 천천히 올려서 이어폰의 버튼을 빠르게 세 번 눌렀다. 다시 처음부터 흘러나오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공격적인 단어들의 조합에 살짝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새벽에도 회사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원격 데스크톱 시스템은 정말 대단한 기술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어폰을 잡고 있던 손을 서서히 내려서 음악 앱을 한 곡 반복 재생모드로 바꾼 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Check my pulse, and if I'm dead, you ow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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