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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선순환선

June 2019. 1. 12. 20:05

퇴근길 지하철에는 옅은 술 냄새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 기분 나쁜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내 자리를 찾으러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자 나와 상관없는 인생들의 얼굴이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기분이 좋은 듯 보였고, 누군가는 심각했고, 누군가는 무표정했는데 정작 내 표정이 어떤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설레고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겠죠.

평범한 일상이 설렘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물론 저는 그런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무표정한 얼굴로 기댈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딘가에 기대면 즐겁지는 않더라도 약간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안정적으로 목적지까지 앉아서 갈 자리는 고사하고 잠시 기대기 좋은 스팟조차도 경쟁이 치열해서 내가 있을 자리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지하철이 정거장에 도착하고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나 내 자리가 생길까 두리번거리지만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정쩡한 위치에 계속 서있는 저는 이내 헛된 기대를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습니다.

앉고 싶어서 앉을 자리를 찾는 것이, 그게 힘들 거 같으니 그냥 좀 기대 설 자리를 찾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요? 나는 서 있기 때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비웃을 자격을 얻은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아직은 앉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치 ‘나는 절대로 앉을 생각이 없어. 자리가 나더라도 그냥 서 있을 거야’라는 식으로 위장하는 그 질 나쁜 태도이겠지요. 왜 나는 실패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자기 생각까지 거짓으로 바꿔야 할까요. 그래 봐야 나 자신을 너무 잘 아는 나는 스스로를 위선자로 매도할 수밖에 없는데요.

지하철이 커다란 역에 멈추고 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객차에 쏟아지듯 들어왔습니다. 스스로를 매도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만큼 한산했던 객차는 이내 똑바로 서 있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정도로 빡빡해집니다. 어딘가에 앉았으면, 기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옅은 알코올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당장 살아남기도 이렇게 바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인가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하철을 굉장히 많이 탔던 저는 이렇게 혼잡한 객차에서도 능숙하게 서 있을 수 있었고 목적지까지 정말 무사하게 도착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들 무심하고 사소하게 해내는 일인 걸요.

무언가 사소하게 잘못되었는지 짧은 마찰음이 들리고 관성이 저를 한 대 치고 지나갔습니다. 살짝 기우뚱하는 몸을 가누기 위해 손잡이를 잡은 팔에 힘을 줍니다. 혹시라도 누구에게 폐를 끼칠까봐 꽤 많은 힘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버틸만한 여력이 충분히 남았는지 저는 쓰러지지 않고 제 몸을 원래의 각도로 돌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요. 이렇게 조금씩 더 능숙해진다면 다음 고비가 왔을 때는 좀 더 둥실하고 관성을 흘러넘길 수 있을까요?

하지만 고비는 다른 형태로 찾아왔습니다. 이미 꽉 찬 것처럼 보였던 객차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더 타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도 이 지하철을 타야 하는 나름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저는 그것을 못마땅한 기득권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살짝 불편했던 상황이 아주 불편한 상황으로 바뀌었거든요. 사실 저도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었는데 말이죠.

불편한 기분을 조금 누그러뜨리려 다른 음악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정말 별로였거든요. 조심조심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는 유토피아 같은 모습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미로 찾기를 하듯이 복잡한 팔의 이동 경로를 요구했습니다. 몇 번의 위기 끝에 핸드폰을 들어 올린 저는 확률의 신이 나를 구원해주리라 믿으며 전곡 랜덤 재생으로 설정되었던 플레이리스트의 다음 곡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신이 저를 10번가량 배신했을 때쯤에서야 저는 그냥 스스로를 구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른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난해한 문제였기 때문에 한 손으로만 핸드폰을 조작해야 하는 상황은 불편함에 불편함을 더하는 상황이었지만 저는 간신히 음악 앱의 앨범 선택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떤 음악을 들을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시키면 되겠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차원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현재 기분과 처한 상황, 그리고 나도 모르는 내 기대 심리 같은 것을 모두 고려해야 적합한 음악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요.

확신 없는 손가락으로 최근 발매된 이모(Emo) 장르의 앨범을 선택하고 재생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곧 편안한 느낌의 우울함이 미약하게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적절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느낌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거든요. 어릴 때는 펑크(Punk) 장르의 음악이 내포하는 저항성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이모 장르의 음악이 표현하는 순응의 감정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으니 확실히 나이를 먹기는 먹은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답답하고 불편하고 우울한 감정들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음악들이 '센 척'하는 것에 비해서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겠죠. 현실의 문제들과 복잡한 상황들에 무작정 저항하는 것은 상처를 받이 받는 일이라는 것도 알아버렸고요.

어느덧 지하철이 관악구에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관악구 소속의 몇 개 역을 지나면서 그 많은 사람이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히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지하철은 눈에 띄게 한산해졌습니다. 서 있는 사람이 앉아있는 사람보다 더 적을 정도로요. 순식간에 소수자의 입장이 된 저는 다시 다수의 그룹에 포함되기 위하여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열심히 둘러봤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서클에 가입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요.

지하철이 다음 역에 도착하고, 몇몇 사람이 내렸습니다. 몇 개의 자리가 생겼고 이내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애매한 위치의 자리였기 때문에 저는 결국 또 앉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뛰어다녔다면 앉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언제나 부족한 적극성은 저를 계속 서 있게 만들었습니다. 가만히 최선을 다해 서 있으면 바로 앞에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지면서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 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한 저는 짐짓 자리에 앉을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서 있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행동에 따라서 생각이 바뀐다는 유명한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라서 저는 다음 역에서 바로 앞에 자리가 났음에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곧 멀리 있던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고는 마치 자리 욕심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기꺼이 양보한,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내 부끄러워졌습니다. 다음 역에 도착해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고, 이제는 빈자리가 완전히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치 앉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역에서 탄 승객들이 이게 무슨 행운이냐는 듯한 태도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행동하는 법을 잊어버린, 잃어버린 사람처럼요.

지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혹은 지금의 감정과 완전히 어울려서 듣기 힘들다는 생각에 음악을 잠시 중단시켰습니다.  곧 지하철 내의 다양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대화하는 소리, 통화하는 소리, 인사하는 소리, 타이르는 소리, 싸우는 소리 등등. 다른 사람들의 생기 있는 인생을 바라보는 것은 한 편으로는 조금 괴로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은 순환선처럼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그 순환의 일부에 잠시 탑승한 저는 다른 사람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나, 이것이 최선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냥 태도와 생각을 고쳐먹고 자리에 앉아서 내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옅은 술 냄새는 거의 사라졌지만,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내선순환 열차는 제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저를 다음 정거장, 그러니까 제 목적지에 데려다줄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속도가 아닌 정해진 속도로요. 그리고 저는 수천 번 반복했던 루틴에 따라 지하철에서 내리고 오늘 하루를 종료할 겁니다. 최소한 제가 다음 역에서 내리지 않고 홍대입구역이나 시청역 같은 곳으로 갈 일은 없을 테니까요.

왜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달했는데도 모든 것이 단순해지지 않고 자꾸 복잡해질까에 대해 고민해봤는데,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왜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하철에서 내렸습니다. 문득 지금 제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도 즐겁거나 설레는 표정은 아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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