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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non-breaking space

June 2018. 11. 24. 14:42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비공식적인 의뢰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홈페이지 하나만 만들 수 있어?" 미천한 저를 믿고 뭔가를 부탁한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된 저는 제 실력과 상황을 따져보지도 않고 바로 "그럼요"라고 먼저 대답한 뒤 고객의 요구사항을 파악했습니다. "어떻게 만들어드릴까요?"

보통 자신이 의뢰하고자 하는 개념의 실체를 잘 모르는 고객의 요구사항은 매우 추상적으로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때의 고객은 '홈페이지'라는 단어를 발음하기조차 쉽지 않아 보였고, '요즘 그런 게 있다던데 하나 가져와 봐라' 정도의 느낌으로 의뢰를 줬기 때문에 저는 약간의 대화를 통해서 모든 요구사항을 제가 아는 지식과 기술의 범위로 끌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게시판 같은 건 필요 없고 그냥 소개랑 일정, 사진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일정은 이번 달이랑 다음 달 일정만 있으면 되는 거고? 디자인은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죠?" 고객은 그냥 만들라면 만들지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냐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 태도를 담은 표정과 몸짓으로 대충 고개를 끄덕거린 뒤 자리를 떠났습니다.

게시판이 필요 없다는 말, 그리고 일정이 고정되어도 좋다는 요구사항은 바꿔 말하면 별다른 서버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정적인 페이지, HTML 파일과 거기에서 사용하는 그림 파일 정도가 전부였다는 말입니다. 이는 프로그래밍이나 코딩의 영역 보다는 디자인과 퍼블리싱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었기에 개발자에게 시키기에 적당한 일도 아니었고, 자칫하면 개발자의 자존감을 상당히 떨어뜨릴 수 있는 의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개발자가 아니었거든요. 덧붙여서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1학년이었죠.

가을에 하는 학교 전시회에 뭔가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것을 선보이고 싶으니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라는 의뢰를 여름방학 직전 과학 선생님께 받았던 저는 몇 가지 걸림돌을 제거하지 않으면 납기를 지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당시는 1996년이었고 인터넷과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공간은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인터넷에 접속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홈페이지를 만들어본 경험도 없었고 만드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잘 모르는데 할 수 있다고 하는 제 나쁜 습관은 어릴 때부터 있었나 봅니다. 세 번째로 그 때 우리 집 컴퓨터는 33메가헤르츠의 속도로 돌아가는 80386 CPU에 4메가바이트의 램과 100메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를 가진 MS-DOS 6.0을 운영체제로 사용하는 컴퓨터로, 1996년 기준으로도 상당히 구식이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화면에 띄워보려면 적어도 윈도우 95가 돌아가는 PC가 필요했는데 말이죠.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인터넷 교육을 보내줬던 것이죠. 중앙일보 건물 지하에서 했었던 그 교육에서 저는 처음으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 당시에는 인터넷을 처음 접하면 백악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것이 일종의 Hello, World였습니다 - 에 접속을 시도하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넷스케이프 로고에 운석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려야 간신히 그림 한두 장과 글자 몇 개로 이루어진 첫 페이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미국에 있는 무언가에 접속했다는 사실에 살짝 뭉클해지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이었으니까요.

두 번째 문제를 서점에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이 대충 적혀있던 책을 사서 해결한 저는, 세 번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모님께 새 컴퓨터 이야기를 꺼냈고, 간단히 기각당했습니다. 저는 오래된 컴퓨터도 지나치게 잘 가지고 노는 모습 - 그러니까 열심히 게임만 하던 모습 - 을 보여드렸기에 부모님은 새 컴퓨터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가지실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저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던 정보올림피아드 대회에 출전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의 평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명시적인 성과를 가지고 협상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몇 번의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거쳐서 성동구 대표로 선발되어서 서울시 대회에 출전하게 된 저는 결국 새 컴퓨터를 가지고 시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나는 평생 프로그래머 따위는 하면 안 되겠다'라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시 대회에서 탈락했다는 저성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새 컴퓨터를 회수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새 컴퓨터는 윈도우95가 운영체제로 깔려 있었고, 저는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날아갈 듯한 속도의 컴퓨터로 HTML 태그와 포토샵 3.0을 번개같이 배운 저는 가볍게 학교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초기화면을 만든 저는 고객님께 첫 화면을 시연하였고, '뭔가 좀 파스텔 톤으로 바꿔라. 가을이니까'라는 피드백을 받은 저는 제 인생에 없었던 파스텔 톤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파스텔톤은 모르겠고 이런 모양은 어떠신가요'라며 어두운 파란색 그라데이션 바탕과 형광 초록색 글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초기화면을 가져갔던 저는 살짝 혼나고 - 홈페이지 만들 사람이 저밖에 없었기에 크게 혼나지는 않았습니다 - 결국 채도가 낮은 색상들을 조합하여 세 번째 시도 만에 초기화면을 컨펌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의 사진을 적당히 붙이고 '미래 정보화 시대에 학교 홈페이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손수 타이핑해서 학교 소개 페이지를 어렵지 않게 완성한 저는 커다란 고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학사일정 페이지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학사일정 페이지는 달력의 모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게 선생님의 요구사항이었고, 저는 물론 달력을 어떻게 그리는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중1다운 자신감으로 무조건 만들어 드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력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어렵게 산 책에는 테이블을 그리는 방법이 적혀있었지만, 책에 나온 대로 달력을 그리면 날짜가 들어가지 않은 비어있는 칸이 속이 꽉 차있는 듯 뭉개져서 표시되었던 겁니다. '아, 아무 글자도 없으면 표의 칸들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스페이스를 넣어야지'라고 생각한 저는 달력의 빈 칸을 담당하는 <TD></TD> 태그 안에 스페이스를 넣어서 <TD> </TD> 태그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달력은 딱 한 칸의 스페이스만 표시하고 나머지 공간은 뭉개져서 표시되었습니다.

달력의 다른 칸들은 모두 다섯 글자 정도로 공간을 확보해서 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저는 스페이스 다섯 개를 넣어서 <TD>     </TD> 정도로 써주면 달력의 빈칸이 제대로 표시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스페이스 한 개를 넣을 때나 다섯 개를 넣을 때나 똑같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홈페이지를 만들고는 있었지만 구리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전화 요금과 별도의 인터넷 접속료 - 당시에는 그런 게 있었습니다 -가 어마어마하게 청구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인터넷에서 왜 스페이스 하나와 다섯 개가 동일한지에 대해 검색해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구글도 없었지만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저는, 결국 홈페이지의 세계에서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이스가 없는 것과 하나인 것은 차이가 있더라도 하나인 것과 여러 개 인 것은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가설을 세우고는 이 문제를 타파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중학생의 머리로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치부심하여 큰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아무래도 인터넷에 접속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지식들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지식의 바다이니까 나는 거기로 가야겠다. 가자 인터넷의 바다로. 테이블 잡으러.

물론 접속을 위한 기술적인 준비는 이미 다 되어있었습니다. 새 컴퓨터에는 모뎀이 달려 있었고, 저는 실제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PC 통신망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연결 기능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종량제로 과금되는 살인적인 요금이었죠. 하지만 저는 달력을 완성할 수만 있다면 한 달 뒤 전화 요금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 집에서 쫓겨나더라도 상관없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철저히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시뮬레이션해 본 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하이텔에 접속하여 인터넷 접속 메뉴에 들어갔습니다.

중2를 앞두고 있던 저는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쓰는 것들을 쓰기 싫어하고 남들이 잘 안 쓰는 것을 쓰고 싶어 하던 마이너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웹에 접속할 때 쓰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쓰지 않고 당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거의 쓰이지 않던 브라우저, 그러니까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선택하여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 알타비스타에 접속할까 야후에 접속할까 고민하다가 고민에도 종량제로 비용이 과금된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저는 주소를 치기 편했던 야후에 접속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첫  페이지에 링크된 홈페이지 중 달력이 있을 만한 홈페이지를 잽싸게 눌러서 들어가 봤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달력은 아니지만 뭔가 비슷한듯한 테이블을 찾을 수 있었던 저는 그 홈페이지의 소스를 긁어서 메모장에 붙여넣은 뒤 잽싸게 인터넷 접속을 종료시켰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원하는 것을 얻은 저는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고 기분 좋게 소스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듯 대단히 복잡했던 HTML 코드에서 간신히 테이블을 표시하는 부분을 찾았지만, 그런데도 저는 빈칸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쉽게 알지 못했습니다. 모르는 태그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시험 삼아서 테이블 태그를 쭉 긁어서 제가 만들던 홈페이지에 붙여봤지만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인터넷에 접속할 용기가 없었던 저는 긁어온 HTML 코드에 있는 모든 태그를 다 한 번씩 써보고 용도를 파악하기로 결심하고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태그를 하나씩 하나씩 써보면서 책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지식을 채워나갔습니다. 하지만 모든 태그를 다 써봐도 여전히 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깊이 좌절하여 그냥 그만둘까를 고민하던 저는 문득 신경을 거스르고 있던 단어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nbsp; 라는 단어였는데, 생각해보니까 이 코드에는 저 태그도 아닌 단어가 무척이나 많이 사용되었는데 아까 인터넷에서 잠깐 봤던 페이지에서는 저 글자를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저 글자를 제가 만들던 홈페이지에 넣어봤는데, 아무 글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모르는 뭔가 다른 기능이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좌절한 저는 &nbsp를 '써봤는데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는' 태그들의 집합에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거슬리는 것이, 뭔가 용도가 있다기에 &nbsp; 는 너무 많이 쓰이고 있었고, 또 연속으로 쓰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나 어떤 문장의 앞부분에서요.

문득 저게 스페이스를 표시하는 단어, 그것도 연속으로 쓰면 연속으로 먹히는 스페이스를 표시하는 단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달력의 빈칸마다 &nbsp; 를 도배해서 지금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시험 삼아서 HTML 파일을 하나 만들고 <p>A B</p>와 <p>A  B</p> 그리고 <p>A&nbsp;B</p>와 <p>A&nbsp;&nbsp;B</p>를 나열한 뒤 그 파일을 익스플로러로 열어봤습니다. 그리고 3개의 A B와 1개의 A  B가 화면에 표시되었을 때 저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원하던 그 기능을 &nbsp;가 해줬거든요.

&nbsp; 태그를 아낌없이 도배하며 학교 홈페이지를 마무리하여 완성한 저는 '나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문제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과감한 결정, 신속한 행동과 많은 행운을 동원하여 해결한 첫 번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이후에 진로지도 교육을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장래희망에 프로그래머라고 적어서 제출했습니다. 좋은 직업일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한 달 뒤 저는 전시회에 학교 홈페이지를 출품할 수 있었고, 제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중학교 홈페이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상장 하나 받지 못했지만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낸 성과를 인정받은 것 같아서요. 그리고 며칠 뒤,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찍힌 전화 요금 고지서가 날아와서 부모님께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앞으로 다시는, 평생, 죽어도 인터넷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부모님께 맹세하면서 속으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인터넷을 마음껏 써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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