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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자율출-퇴-근제

June 2018. 10. 22. 23:30

새벽 5시 무렵에 집을 나서는 기분은 보통 좋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 시간에 집에서 나오기 위해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더더욱이요. 평소라면 잠들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은 유쾌한 기분일 수가 없겠죠. 그런데 그날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제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금 설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영화가 개봉하던 날이었거든요.

저는 항상 기다렸던 영화는 가능한 가장 좋은 극장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았던 극장은 천호동에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저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출근하거나, 퇴근한 뒤 영화를 보고 집에 갈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퇴근 이후의 시간대보다는 출근 이전의 시간대가 훨씬 좋은 자리를 예매하기 편했기 때문에 저는 주로 아침에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개봉일 아침에 영화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출근하면 점심시간 무렵에는 '아, 그 영화요? 저 벌써 보고 왔어요. 재미있냐고요? 어휴, 어떻게 하면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 이 영화의 위대함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식으로 동료들보다 문화적으로 앞서나가는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이지요.

그날도 저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횡단하면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영화평을 먼저 머릿속에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 감독의 액션 연출은 끝내주는 것 같습니다. 와, 워너 주식 좀 사야겠는데요? 세상에 거기서 그런 흐름으로 흘러갈지 예상도 못 했어요. 모든 행동에 개연성이 넘쳐서 정말 대박 공감하면서 봤어요. 등등이요. 

영화평을 예상하고 얼마나 적중할지 기대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한 시간 동안 계속 영화평만 생각할 수는 없었기에 저는 곧 핸드폰을 꺼내 들고 인터넷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보려는 영화가 너무 쓰레기 같다는 소리가 자꾸 나오는 겁니다. 다른 영화사 알바가 올린 글인가?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이 영화가 별로래요. 해외 평가도 엄청 안 좋았고요. '시사회에서 기립박수 나왔다며! 이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데 재미가 없을 수가 있어!'라며 현실을 부정하던 저는 결국 평소에 안 하던 행동, 그러니까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평을 먼저 검색하는 행동을 해버렸고 많은 희생자들의 일관된 진술을 토대로 이 영화를 보러 가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우리 회사는 극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천호로 향해 달려가는 지하철은 우리 회사를 향해서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마든지 아주 약간의 시간 비용을 지불하고 영화관으로 향하던 경로를 회사로 향하는 경로로 바꿀 수 있었죠. 그러니까 영화 예매를 취소하고 바로 출근하는 것은 그냥 결심의 문제이지 지리적인 문제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취소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우리 회사는 자율출퇴근제가 아닌 자율출근제를 하고 있었거든요.

자율출퇴근제와 자율출근제는 '퇴' 한 글자만 다른 것 치고는 상당히 많은 측면에서 다른 제도입니다. 물론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자율출퇴근제는 출근과 퇴근이 자유로운 제도이고 자율출근제는 출근만 자유로운 제도입니다. 그래서 자율출근제는 출근한 시간을 기준으로 9시간을 근무해야만 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 회사의 경우 출근 시간도 완전히 자율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 하루 전에 다음 날 출근할 시간을 미리 시스템에서 변경해놓고 그 시간에 맞춰서 출근해야 했습니다. 저는 내일 영화를 보고 출근할 테니 11시에 출근하겠습니다. 라는 식으로요. 11시를 넘어서 출근하면 지각이 되는 거고요.

출근 시간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 결정이 계획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자율출근제는 정말 마음의 자유까지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반자율출근제 정도의 명칭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7시에 시작하는 150분짜리 영화를 보고 출근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한 뒤 10시 30분까지 출근하겠다고 시스템에 저장했습니다. 그러면 그날의 퇴근 시간은 오후 7시 30분이 되겠지요.

그런데 제가 영화 예매를 취소하고 출근하면 '어? 오늘 10시 반에 출근하겠다고 하더니 왜 일찍 나왔어요?' '잭 스나이더가 저를 배신하기 전에 제가 먼저 배신했습니다'와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부끄러움은 둘째 치고서라도 10시 30분 이전에 출근해서 일한 것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10시 30분보다 늦게 출근하면 혼나지만, 3시간쯤 일찍 출근해도 칭찬은커녕 근무시간으로 인정도 못 받는 것입니다.

지구와 저 사이의 만유인력처럼, 회사와 저 사이의 재산 차이도 어마어마 했기 때문에 제가 회사에 3시간의 무보수 노동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고 해봐야 회사가 감동할 리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냥 영화를 취소하지 않고 보기로 했습니다. 에이, 설마 아무리 재미없다고 해도 기본은 하겠지. 두 영웅이 신념을 걸고 싸울 테니 둘이 어떻게 싸우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싸우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화해시켰는지에 집중하자. 평론가들의 취향은 대중과 다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시각으로 영화를 보는 거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자. 생각해보면 나는 무슨 영화든 잘 봤잖아?

그리고 3시간 뒤, 영화관을 나오며 저는 이 망할 회사에 노조가 아직도 없어서 자율출퇴근제를 전면 시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저주했습니다. 자율출퇴근제는 출근과 퇴근이 모두 자유로운 제도이고 아주 기본적인 규칙, 그러니까 하루 4시간 이상 근무할 것과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근무할 것만 지켜진다면 출근과 퇴근 시간을 모두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거든요. 그날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서 오후에 출근해도, 아니면 예매했던 영화를 취소하고 새벽에 출근해도 출근하는 그 시점부터 근무시간이 기록되는 제도인 것입니다. 그 제도가 있었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영화를 취소하고 회사에서 근무시간을 채웠겠지요.

이 영화는 그냥 VOD로 나오면 사서 봤어야 했는데, 그냥 집중 안 하고 볼 수 있는 환경에서 핸드폰도 가끔 보고 중간에 지루하면 멈춰놓고 나중에 볼 수도 있고 흥미 떨어지면 그냥 안 볼 수도 있는 그런 환경에서 봤어야 했는데, 나는 왜 국내 최대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저 말도 안 되는 서사를 끝까지 보고 있어야 했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가 이게 다 자율출퇴근제가 없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앞으로 제가 더 인간답게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하는 회사로 이직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직을 위한 용기를 다년간에 걸쳐서 서서히 쌓아나가고 있을 무렵 회사가 저를 놓칠 수 없었는지 먼저 자율출퇴근제를 전면 시행했습니다. 이직 면접장에서 '지원동기가 뭐에요?' '배트맨대 슈퍼맨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기회를 놓친 저는 살짝 아쉬웠지만, 자율출퇴근제가 주는 인간적인 배려에 감사하며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잠에서 깼을 때 시계를 보고 내 인생은 이제 끝이야 라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현관을 나서다가 오늘 상의와 하의의 색 조합이 충돌을 일으킨다는 느낌을 받으면 다시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었고, 신도림역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싶으면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커피 한 잔을 사서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사서 들어갈 수 있었고, 이 영화는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가끔 명시적인 규칙들과 암시적인 강요 때문에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명시적인 규칙들 내에서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경우가 생기고요. '너 왜 그렇게 맘대로 하냐?' '아니, 이러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사회생활 하려면 눈치가 있어야지. 남들이랑 똑같이 안 할래?'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 지위가 높아지고 위력을 가지게 되신 분 중 일부는 자신의 기준으로 암묵적인 룰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강요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안 따라오면 화를 냅니다. 그분들을 절대 놀래거나 화내지 않게 만드는 사람은 보통 '사회생활 잘한다'는 평을 받게 되고요.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언뜻 그 조직은 매끄럽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요?

자신은 체계적인 규칙을 만들고 있다고 착각하며 실제로는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가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결국 회사는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다시 명시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합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 해서는 안 되는 행동, 해서는 안 되는 생각들을 명시하고 교육을 받게 합니다. 회사 생활에 폭언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성희롱은 분위기상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갑질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각자의 말도 안되는 기준으로 폭언, 성희롱, 갑질의 선을 정의하고 앉아 있다가 그게 세상의 진리인 양 떠들고 있으니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교육을 하는 것이지요.

자율출퇴근제의 시행으로 근무시간이 아이스크림 녹듯 유연해지고 나서 한동안 회사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들 회의실로!'를 외치면 일사불란하게 모든 사람이 다이어리를 꺼내 들고 움직이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사람들은 자율출퇴근제가 자신의 권위를 깎아 먹는 제도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미리 회의를 계획하고 하루 전에 공지하는 스마트한 모습으로 권위를 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우리 부서는 10시부터 점심시간까지 집중 근무 시간입니다. 다들 무조건 10시까지는 출근하세요. 10시까지 출근 못 하는 사유 있으면 미리 말하세요.'라는 로컬룰을 만들어서 공지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던 사람들도 있었죠. 아마 그렇게 하지 말라는 '명시적인' 공지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키는 대로 사는 모습이 불편해서 자신들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겠죠.

그렇게 엇나가는 분들에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보통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미 위계가 강하게 생겨버렸고 그런 규정들이 위계를 계속 견고하게 만들거든요. 반대로 말하면 암시적인 규칙이 사라질수록,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할수록 그런 위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거고요. 그래서 우리는 더 좋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경멸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한다는 공지를 받았던 저녁, 너무 많이 회사에 양보했던 내 인생의 주도권을 살짝 되찾았다는 생각에 행복해하고 있던 저에게 누군가가 갑자기 찾아와서 '이야 자율출퇴근제라니 세상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넌 이제 몇 시에 출근할 건데?' 라고 물어봤습니다. '응? 자율출퇴근제가 내가 알고 있던 제도가 아니었나? 저걸 갑자기 왜 물어보시지?'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9시까지 출근할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을 마음속의 세절기에 던져 버리고 저만 느낄 수 있는 경멸의 어조를 미세하게 담아서 '그냥 자율적으로 출근할 겁니다'라고 대답하고 자율적으로 퇴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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