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가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보통 IT 계열의 자기소개서는 질문의 형태는 달라도 대충 '네가 얼마나 팀 단위로 일하는 것에 익숙하고 잘하는지 말해봐라' 식의 질문이 보통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보니까 아무래도 팀 단위로 일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은 본인도 같이 일하는 사람도 괴로운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걸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부류의 질문에 꼭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팀 프로젝트가 있는 전공과목에서 단 한 번도 A+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제가 수십 년간 일할 수도 있는 회사와의 첫 연결에는 정직과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진에 포토샵도 안 했고, 자기소개서에 소설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저는 글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글자 제한에 걸려서 쓰지 못한 말은 있었죠. '다만 그 모든 팀 프로젝트에서 코딩과 발표는 제가 혼자 다 했습니다.'

학생 시절의 저는 지금과 다르게 성적 잘 받는 것이 인생의 최우선 목표였고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학생과 마찬가지로 조별과제가 있는 과목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제가 아무리 잘해도 성적이 잘 안 나올 수 있는 변수를 두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공대 커리큘럼은 거의 모든 전공과목에 팀 프로젝트를 두는 것이 유행이었고 저는 개인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정말 많은 팀 프로젝트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서도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과목은 무조건 혼자 했고, 팀을 꼭 만들어야 하는 과목은 대충 팀을 만든 다음 모든 코딩 분량과 발표를 독점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3명짜리 팀이든, 10명짜리 팀이든 상관 없이요. 대부분의 조원은 매우 협조적으로 자신의 과제 분량을 저에게 양보하고 다들 데이트를 하러 가거나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대부분의 조별과제 팀들이 분열로 다 같이 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저는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지 않았고 모든 조별과제를 매우 우수한 팀워크 - 좌뇌가 팀장이었고 우뇌가 보조였습니다 - 를 자랑하며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성적도 잘 나왔고 개인적인 성취감도 어마어마했죠. 교양과목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전공과목은 무조건 A+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3학년 2학기였습니다.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거듭했던 저는 드디어 컴퓨터 그래픽스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자격 - 3학년이고 등록금을 납부했을 것 -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스는 당장이라도 포토샵을 켜서 브러쉬의 Hardness를 조절해야 할 것 같은 과목명과 다르게 3차원 그래픽을 프로그램으로 그려내기 위한 수학적인 배경과 그래픽 이론을 배우는 과목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컴퓨터 그래픽스라는 고혹적인 이름에 끌린 학생들이 1주 차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몰렸다가, 첫 수업에서부터 매트릭스를 연상케하는 칠판을 가득 메운 행렬 계산에 질려서 절반 이상이 수강 포기 - 인천 지역 속어로 포강을 - 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들었던 모든 과목 중 가장 극적인 드랍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학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어쨌든 컴퓨터 그래픽스에서 많이 쓰는 수학은 선형대수와 같은 대수학 계열이었고 그나마 제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미적분은 별로 쓰이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전공과목에 대한 어마어마한 자신감은, 시적허용을 이용해서 표현하자면 가역행렬을 곱해도 줄어들지 않을 기세였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스 과목은 예상대로 재미있었습니다. 3차원 공간의 객체를 2차원의 모니터에 표현하기 위해서 벡터와 행렬 계산으로 차원을 한 단계 낮추는 것도 재미있었고, 카메라의 위치와 시야를 계산하는 것도, 세상의 색상과 빛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모든 전공 과목과 수학 과목에서 좌표계는 항상 x,y의 2차원이었는데 x,y,z의 3차원 좌표계를 다루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었고요.

이 과목의 마지막 과제는 배운 것을 총동원해서 3차원 그래픽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이 주신 주제는 '바다를 떠다니는 배를 그려라'였습니다. 딱 저 한 줄이 과제의 전부였습니다. 어떤 배를 어떤 바다에 그리건 그것은 개인의 기량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모두 자유라고 했습니다.

저는 수업을 열심히 들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과제를 해낼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위치인 위에서 삐딱한 45도, 그러니까 쿼터뷰 시점에 위치시키고 갈색 직육면체를 그려서 해저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반투명한 파란색 직육면체를 그려서 바닷물을 표현했습니다. 참고로 반투명한 파란색은 불투명한 파란색에 비해서 꽤 어려운 코딩이었지만 기량을 뽐내기 위해서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폴리곤을 열심히 조합하여 삼각돛을 달고 있는 배를 하나 그렸습니다.

그리고 카메라의 반대쪽 하늘에 태양 역할을 수행할 광원을 위치시켰습니다. 레이 트레이싱 기술은 제 실력으로는 무리였기 때문에 적당한 밝기의 광원을 주고 전체적으로 앰비언트 라이트를 더해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저는 밝은 풍경이 좋았거든요. 그렇게 해저 지형과 바닷물, 배를 그리자 얼추 과제가 완성되었지만, 더 좋은 성적을 위한 제 욕심은 기어이 배를 타원형으로 움직이게 하고 바닷물에 애니메이션을 주어서 위아래로 일렁거리게 했습니다. 물론 배도 빙빙 도는 것과 함께 바닷물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상하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컴퓨터공학도들은 완벽하게 돌아가는 과제를 완성시키면 살짝 자기 자신에게 취해서 컴퓨터에 과제를 틀어놓고 한동안 가만히 지켜봅니다. 저도 한동안 무한한 루프를 그리며 돌아가는 제 결과물을 지켜보며 머릿속에 제 밝은 미래를 그려나간 뒤, 상쾌한 기분으로 과제를 업로드 했습니다. 농구 선수들이 슛을 쏘자마자 들어갈 것을 확신하듯이 저도 과제를 업로드 하자마자 만점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목은 과제를 인터넷 클래스에 업로드 하는 것이 아니라 웹하드에 업로드 하도록 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은 용량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교내 사이트가 감당 못 할 것을 우려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웹하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각자에게 주지 않고 하나만 공지한 교수님의 무심함 덕분에 저는 다른 학생들의 과제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이 배는 커녕 삼각형 하나 그리기도 어려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기 내내 실습 한번 없이 이론 수업만 계속하다가 알아서 프로그램을 짜라고 했으니 어려울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과제를 제출한 저 자신에게 다시 한번 놀라면서 계속 다른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제출한 과제는 용량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과제에 뭘 한 거지?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실행해보니 갑자기 화면에 안개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잠시 당황하고 있으려니 화면 위 쪽에 설명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W는 앞으로 전진, S는 뒤로 후진, A와 D는 방향 전환. 이런 설명이요. 그래서 설마 하는 기분으로 W를 누르고 있었더니 안개를 찢고 거대한 갤리온 한 척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자욱한 해무와 기암절벽 사이를 항해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저는 그 과제에 대해서 인천 사투리로 '쩐다'는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닷물을 반투명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안개라니. 물이랑 배에 입힌 이건 텍스처잖아? 이건 정규 수업 과정에 없었는데 역시 선행학습은 학생 간의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 과제를 제출한 학생의 이름을 기억해두고 학기를 마쳤습니다. 물론 그 과목은 A+를 받았습니다.

반년이 지나고 저의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선수 과목인 컴퓨터 그래픽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한 덕분에 마지막 학기에 게임 프로그래밍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자격 - 4학년이고 컴퓨터 그래픽스를 D+ 이상으로 이수했으며 등록금을 납부했을 것 -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게임 프로그래밍 과목은 학문의 전당이 되어야 할 대학이 취업의 전당이 되어간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교수님들이 싫어하는 과목이었지만, 사실은 고급 컴퓨터 그래픽스 과목의 이름을 취업에 유리하게 바꾼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과목에서 여전히 어마무시한 행렬 계산과 카메라, 색상, 빛, 쉐이더 프로그래밍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무렵, 교수님은 컴퓨터 그래픽스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최종 과제를 공지했습니다. '아무 게임이나 하나 만들어라' 다만, 이 과제는 컴퓨터 그래픽스의 최종 과제와는 다르게 팀 프로젝트였습니다.

팀은 랜덤으로 짜여졌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방식대로라면 '내가 게임 하나 만들어오고 발표까지 할 테니 다들 쉬고 계시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시작했어야 했는데 저는 사실 이 과목의 프로그래밍에 자신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수학적 능력은 컴퓨터 그래픽스 과목까지는 간신히 버텼지만 이 과목에서는 배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죽어라 공부해서 중간, 기말고사는 그럭저럭 잘 봤지만 팀 프로젝트를 잘 끌고나갈 자신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팀 프로젝트를 망치면 A+가 A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팀 프로젝트는 무조건 잘 마무리 해야 했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만들어서 제출하고 다른 팀들이 엄청나게 못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팀원들과 모여서 어떻게 할지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교내 사이트에서 다음 수업 시간 끝나고 한 번 모이자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팀원들을 검색하는데 한 명의 이름이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아닌데, 왜 이름이 익숙하지? 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대항해시대를 만들었던 그 친구.

그리고 첫 팀 모임 때 그 친구가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알아서 다 만들 테니 두 분은 쉬엄쉬엄하세요'라고. 그리고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문서를 만들고 발표만 담당했을 뿐 코드에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자기가 작성하던 코드를 보내주지 않았지만 보내줬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다른 팀 프로젝트를 할 때 팀원들에게 코드를 중간에 보내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엄청 씁쓸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최종 프로젝트 결과 발표가 있던 날. 저는 그냥 준비한 대로 최종 발표를 진행하였고, 그 친구가 나와서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시연했습니다. 참고로 그 과목의 다른 팀들은 모두 피카추 배구만도 못한 게임을 시연했기 때문에 저희는 그냥 네모반듯한 상자 속을 전후좌우로 걸어 다니는 것만 시연해도 1등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그 친구는 퀘이크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서 스테이지를 뛰어다니고 총을 쏘는 시연했습니다. 다시 한번 인천 사투리로 표현하자면 쩔었던 시연이 끝나고, 교실 안의 모든 학생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도 팀원이었지만 그 때 게임을 처음 봤기 때문에 똑같이 충격을 받아서 발표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교수님은 매우 흡족해하며 저희 팀의 팀워크가 월등하다는 강평과 함께 학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부끄럽게도 A+를 받았습니다.

4학년이었던 저는 여기저기 취업을 위해 지원서를 한참 작성하고 있었고, 마지막 팀 프로젝트 과목이었던 게임 프로그래밍 과목에서 A+를 받아버린 탓에 자기소개서에 뻔뻔하게도 '팀 프로젝트 과목에서 A+를 놓친 적이 없었던'이란 표현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충 취업에 성공해서 직장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전공밖에 할 줄 몰랐으니 전공을 살려서 IT 회사에 취직했지요.

저에게서 전공, 그러니까 프로그래밍이니 코딩이니 하는 것들을 빼면 뭐가 남을까요? 뭔가 남기는 남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저는 제 분야에서 가급적 많은 성취를 이루려고 기를 쓰고 일을 했었습니다. 다시는 팀 단위로 뭔가 할 때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손 놓고 있는 상황을 만나기 싫었습니다. 그래야 제 인생의 가치가 완성되어 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제가 뭔가 이루어내고 완성한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너는 여태 뭘 했니? 라고 누가 물어보면 저는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해의식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각자 되게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다들 각자의 인생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처럼 느껴지죠. 나에게는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다들 나보다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나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빛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서 고개를 푹 숙여봐야 보이는 것은 제 그림자밖에 없고요.

분석심리학에서 그림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약하고 열등한 심성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만들어낸 나의 페르소나 뒤에 숨어있는 감추어진 부분이요.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꾸며낸 모습의 반대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나의 가장 진실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림자는 사실 나의 인격적인 결함과 부족함을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진 그림자가 옅어질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스스로를 꾸며내지 않아도 되는 곳을 편하게 생각하고 저와 다른 사람들이 많은 곳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프로그래밍, 알고리즘, 컴퓨터 그래픽스, 정수론을 배웠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는 것을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게 되었죠.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그림자의 중요한 속성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의 그림자로부터는 아무리 달아나려고 해도 달아날 수 없다는 점이지요. 내가 누구보다도 더 밝게 빛나지 않는다면요. 하지만 세상에는 게임 프로그래밍의 팀 프로젝트를 했을 때 처럼 저보다 훨씬 더 빛나는 사람도 있었고, 성적이니 성과니 신경 쓰지 않고 저와 다른 방향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엄청 많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꾸며내느라 아등바등 살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이룬 게 없어서 슬퍼지더라고요.

자기가 미래에 더 이상 뭔가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내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그런 거요. 아직 뭔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깨끗하게 자신이 이룬 것이 별로 없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 잘하면'으로 시작하는 그런 거요. 어쨌든 이룬 것이 없음에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지치지는 않았다는 소리이기도 하잖아요?

20대 시절에는 내가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해서 내가 가진 어두운 부분들을 모두 다 가려버려야겠다는 생각에 가득했었죠. 음... 그러니까 깃헙에서 별 2만 개 정도 받은 개발자한테 '당신은 뭐가 부족하길래 아직도 결혼을 못 했습니까?'라고 따지기는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그런 자신감이 현실에 눌려서 하나 하나 가라앉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고민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나는 제대로 살았나?'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때 조별과제 안 하고 술 마시러 갔던 사람들은 지금 나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두통과 불면증을 유발하게 되니 참으로 인생에 유익하지 못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자와 그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림자는 바라볼 수는 있어도 속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잡을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그늘은 그림자로 인하여 생기는 공간을 의미하죠. 그래서 우리는 더위를 피해 그늘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림자 속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더워도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그늘 삼아서 쉴 수는 없습니다. 쉬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늘을 찾아가야 하지요. 그림자와 그늘의 언어적인 차이를 생각해보면 그늘에는 그림자에는 없는 '의지하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거든요. 다들 뜨거운 햇볕에 괴로워할 수도 있고 강한 햇빛이 만들어낸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보면서 힘들어 할 수도 있지만, 그 그림자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인간적인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어서 어두운 현실에 다른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주거나, 넉넉하고 곧은 사람이 되어서 눈부신 현실에 가림막이 되어주는 것. 둘 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생각보다는 소박한 목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 빛날 필요 없이 그저 살짝 빛나면 되는 것이고 모든 볕을 다 가려줄 필요 없이 그냥 그곳에 서 있으면 되는 것이거든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치는 것과 지키는 것  (2) 2018.11.01
자율출-퇴-근제  (0) 2018.10.22
그림자와 그늘의 차이에 대해  (2) 2018.10.09
Artificial Insomnia  (0) 2018.09.24
Semi-Automatic  (0) 2018.09.10
Little Big Adventure  (2) 2018.09.07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