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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Semi-Automatic

June 2018. 9. 10. 20:52

매일같이 걸어가는 퇴근길을 걸을 때는 그 익숙함이 마음에 살짝 틈을 열어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고 주변의 풍경과 소리에 특별함이 없기에 걸음을 반쯤은 무의식의 영역에 맡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반자율보행 상태에 진입하게 만들고 얻은 머릿속의 여유에 다른 생각들을 반쯤 집어넣고 흘러가게 놔둡니다. 그 생각의 흐름이 잠시 멈추면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다시 이런저런 생각이 흘러가기 시작하면 그 흐름에서 의미 있는 생각들을 찾아다니다가 곧 음악 소리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관적인 세계의 흐름에서 주변에 스쳐가는 다른 사람들과 자동차들, 건물들, 불빛들은 대부분 무시됩니다. 무시당하지 않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요? 아마 타이밍 좋게 바뀌는 횡단보도의 빨간 신호, 무의식적인 걸음으로 피할 수 없는 장애물들, 호기심의 역치를 넘어서는 소음들 정도가 있겠네요. 바꿔서 말하면 내가 집에 가고자 하는 의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 모든 것들은 그 순간 전부 사소한 존재가 됩니다. 제가 스쳐 지나간 편의점이 지난달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든, 제가 건너가는 횡단보도의 정지선에 서 있던 차에 미래의 판검사가 타 있든 말이죠. 그게 다 제 인생과 무슨 상관일까요.

반대로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의 인생에도 저라는 사람은 지극히 사소한 존재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요. 가끔은 그 사실이 소름 끼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소름 끼칠 이유가 전혀 없는 자연스러운 사실이라는 점이 우울하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해외여행을 가보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인생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점에 질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사실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당장 제 옆집에 사는 사람도 저와 별 상관이 없는 인생을 사는 걸요.

세상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는 제가 가진 감각들로 세상을 느끼고 제가 가진 감정과 생각들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저 자신에 대해서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이라는 재귀적인 시각에서 저는 세상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을 테니 그 사실이 별로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 거대함과 그 사소함 사이에 오는 괴리감입니다. 1인칭 시점의 세계관에서 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세상이 움직이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관찰자임을 알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그 좌절감이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감이 지워지는 것이 두려워서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성장 과정 전반에 있어서 존재감이 강했던 적이 거의 없었던 제가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선택한 생존 전략은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일을 많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성과라는 것이 존재하는 프로젝트나 부서에서는 일을 많이 하면 어딘가 목록의 위쪽에 위치할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성과라는 것이 일의 양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기에 일을 정말 많이 해야만 그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을 진짜 많이 하다 보면 점점 그것이 당연해지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일을 많이 해야 된다는 그 강박이 저를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사람이 아닌 프로젝트를 수습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러다가 점점 프로젝트 마을의 여관주인이나 대장장이 같은 NPC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순간 프로젝트와 부서에서도 마치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비명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었지요.

물론 실제로 일하다가 비명을 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화를 내거나 울거나 반항하거나 하는 식으로 감정을 드러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것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몇 번 아프게 깨닫고 나서는 되도록 회사에서는 모든 종류의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감정을 철저히 숨기면 그것도 이상하게 보이므로 몇 가지 가짜 감정을 적당히 만들어서 그 위에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실에 깊이 동감한다는 말을 한다거나,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 적당히 웃어준다거나, 실제로 당황스럽지 않은데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또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사실 저는 진짜 감정이라는게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 번의 퇴근길에서 상황을 복기해봐야 그것이 짜증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구나, 화를 냈어야 했구나, 그러고 보니 그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무서운 줄 몰랐네 등등의 후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회사 생활에서 감정적인 해석을 지워나가다보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합리주의의 맹신자가 되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기계를 다루는 직업이라고 해도 생각까지 논리회로를 돌릴 필요는 없는 것인데 말이죠. 사람은 편견이 없다면 배우는 것이 매우 느리고, 감정이 없다면 판단하는 것이 느려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퇴근길에는 감정이입을 할만한 존재가 별로 없습니다. 도시의 퇴근길은 건조하고 차가운 무생물적인 특성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아도 딱히 감동적인 무언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감동적이었던 순간들이나 미래에 감격스러울 것 같은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걸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껏 살려낼수록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재와의 대비가 커져서 눈에 보이는 현실의 풍경들이 비참하게 가라앉는 순간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많은 소리가 존재하지만 머릿속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침묵의 순간이요.

보통 침묵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아를 찾아 나설 때 보통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지요. 하지만 가끔 침묵이 폭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감이 넘치는 순간이요. 자신감 넘치는 행동 혹은 발언이 있고 난 다음 주위에서 거대한 침묵이 몰려온다면 그 침묵은 확실히 폭력적입니다. 반대로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아무 자신감도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거대한 침묵과 무관심은 사람을 한없이 가라앉게 해줍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시끌벅적한 환경이 자아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감이 한참 떨어졌을 때는 2차선 도로보다 8차선 도로를 끼고 퇴근하는 것이 미세하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아니면 늘 다니던 한적한 길에서 침묵의 폭력성과 투닥거리며 계속 걸어가던가요.

하지만 정해진 퇴근길을 벗어나서 다른 길로 향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주변을 열심히 살피고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다들 정해진 루틴을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보통 같은 위치에서 지하철을 타고, 같은 계단을 올라가고, 같은 길을 걸어서 집으로 향하지요.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만 대부분은 꿈처럼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익숙함이 무의미한 생각들을 만들어냈다고 요약할 수도 있습니다. 그 퇴근의 과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퇴근의 결과, 집에 무사히 들어왔다는 사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죠.

저희는 보통 일을 하면서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일하는 과정이 전 세계에 중계되는 스포츠팀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물을 가지고 세상과 이야기합니다. 보통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를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결과를 중시하다 보니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들이 무시당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사람은 숫자로 취급받기 시작하고, 힘들고 지친다는 보고는 누군가 죽어 나가기 전에는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결국 많은 희생 끝에 나온 결과물이 성공적이라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한 프로젝트가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말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많은 과정을 거치며 저에게 소진되고 사라진 것들을 돌이켜보는 것은 살짝 우울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수많은 '성공한' 결과물들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꽤 우울한 일이고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면 그 결과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칭찬을 해줍니다. 하지만 그 열악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소모해야 했던 그 과정에 대해서는 굉장히 적은 사람들만이 위로를 해줍니다. 사실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일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위로인데 말이죠.

그래서 뭔가 위로를 받으면 울고 싶어지는 감정이 가득해지는데, 그것이 평소에 자주 느끼는 우울감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감정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숨기려 하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그 감정의 떨림이 희미해져 가던 존재감을 살려주고 흔들리던 정체성에 힘을 주어서, 다시 한 번 힘든 과정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적이지 않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이 프로페셔널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인간적인 떨림들이 사람을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게 만들어주는지 느껴본 적이 없기에 그런 것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결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은 무의미하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무의미한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설령 같은 길을 통해 집에 가더라도 그동안 하는 생각이 매번 다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주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퇴근길은 매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날은 달빛이 참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날을 달빛이 너무 차갑다고 느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저희는 퇴근할 때 가끔 떠오르기도 하지만 가라앉기도 합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들이 바로 이런저런 생각들입니다. 아, 오늘은 참 힘들었어. 아까는 너무 우울했어. 그래도 그건 다행이었어. 내일은 잘 할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들이요.

그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생각을 정리할 때가 다가옵니다. 사실 정리한다기보다는 남은 생각들을 흘려보내는 것에 가깝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밤하늘은 차가웠는지 따뜻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밤하늘에 녹아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희미하게 만들어주는 거대한 침묵을 느끼면서 무엇이 나를 위로해주는지, 무엇이 내 감정을 되살려주고 나의 존재감을 밝혀주는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집으로 들어갑니다. 내일의 밤하늘은 어떤 색일지, 어떤 온도일지 살짝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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