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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슨 일을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항상 어렵다. 의도와 관점에 따라서 카멜레온처럼 바뀌는 게 우리 직업을 부르는 호칭이라서. 우리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 그냥 컴퓨터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적당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개발과 운영의 차이 그리고 데브옵스 트랜드에 대해서 설명한 뒤 직업을 말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 될 테니까. 어차피 많은 사람에게 컴퓨터 두드리는 일이라면 다 똑같이 보이기 마련이다.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무언가 허세를 부리고 싶다면 "프로그래머요"라고 대답하는 게 유리하다. 영어로 된 직업명이 가져다주는 미지의 매력이라는 걸 누릴 수 있으니까. 필연적으로 되돌아올 "프로그래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이죠"라고 무심하게 대답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허세가 통하지 않을 사람 혹은 그런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될 사람에게는 얌전하게 내 직업을 고하는 수밖에 없다. "개발자예요" 이 말을 할 때는 약간의 침통함을 담아서 발음하는 것이 좋다. "(아 나는 왜 이런 직업을 선택했을까요? 다른 좋은 직업들도 많은데 힘들고 보람 없고 혼나기만 하고 별로 미래도 밝지 않은 제 직업은) 개발자예요"라는 뉘앙스로. 이 직업에 대해서 짤방으로라도 보고 들은 게 있는 사람들은 그 침통함에 대해 깊은 공감의 끄덕임과 "개발자요? 멋진 직업이네요"와 같은 현실성 없는 위로로 답해 줄지도 모르니.

어째서 개발자라는 단어는 불쌍함을 가득 담은 단어가 되었는가. 개발자들이 만들어낸 인터넷 세상에는 왜 개발자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 가득한가. 어째서 우리는 훌륭하고 존경할만한 개발자를 검색 없이는 다섯 명도 말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더 열심히 해서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라는 말은 그가 만들어낸 소프트웨어의 성취보다는 사업적인 성공을 함의하고 있을까. 사실 뻔하다. "나는 존 카멕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해봐야 대부분 사람은 그 말도 안 되는 꿈의 장대함에 감탄하기보다는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존 카멕이 누구인가 검색을 시작하고, 곧 그의 어마어마한 성취 중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서 "아, 오큘러스? VR이요? 나 그거 VR 카페에서 해봤는데!"와 같은 반응을 할 테니. 그러면 우리는 대화를 끌어가기 위해서 존 카멕이 성능 떨어지는 옛날 PC에서 스크롤이라는 것을 어떻게 구현했는가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VR 카페에는 오큘러스보다 바이브가 더 많이 쓰이고 있음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일의 공감받지 못함이라는 게 대게 그 정도이다. 프로그래밍 코드로 짜인 치킨집 팸플릿을 가지고 단톡방에서 돌려보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그런 정도.

공감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아니, 사실 공감은 넘쳐난다. 우리 직업은 불행하고 불쌍한 직업이라는 공감대가 커뮤니티마다 득실득실하니까. 그냥 소소하게 일하고 소박하게 행복한 순간들을 스쳐 지나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만, 우리 업계의 스테레오 타입은 여전히 차고나 골방, 지하실과 같이 빛을 못 보는 어딘가에 맞춰져 있나 보다. 이런 현실에서 일개 개발자가 자신의 밝은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을 내보이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아마도 같은 개발자들에게도,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좌절하지 않을까.

어떤 순간에나 좌절은 발전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공감을 구걸하거나 쥐어 짜내려 하지 말고 차라리 당당하게 비장한 표정과 진지한 목소리로 "그래요. 저는 제이크 와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해 보자. 십중팔구 상대방은 "네? 누구요?"라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거기에 굴하지 말고 의연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깃헙에서 스타를 2만 개 넘게 받은 개발자라면 감히 그 사람한테 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같은 하찮은 질문은 못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상대방의 머릿속에는 깃헙이 무엇인가. 스타는 무엇인가. 2만 개는 얼마나 많은 숫자이길래 저 지랄인가. 네가 못 생겨서 결혼 못하는 거에 이상한 핑계 끌어오지 마. 등등의 생각이 떠돌겠지만 어차피 공감받기를 포기한 우리는 그에 굴하지 않고 논지를 이어갈 수 있다. "안드로이드 폰 쓰세요? 아마 당신이 무슨 앱에서건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 사람이 만든 코드가 계속 돌아갈걸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안드로이드 폰이 있고, 얼마나 많은 앱에서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버튼이 눌릴지 상상해보세요. 내가 만든 코드가 오류 없이 그 많은 버튼의 동작을 책임지는 거죠.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사려 깊은 친구라면 이 타이밍쯤에 이해를 포기하고 기계적인 끄덕거림으로 당신을 배려해줄 테니 걱정 말고 하던 말을 계속하면 된다.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배려심 넘치는 말투로 "그래서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라고 물어보면 아마도 상대방은 어영부영 우물쭈물 의미 없는 대답으로 화제를 흘려보낼 가능성이 높다. 서로 사는 세계와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비공감의 울타리로 격리되었습니다. 쉬운 말로 아싸라고 하지요. 그거 아세요? 세상은 당신이 시간복잡도 엔 세제곱으로 돌아가던 코드를 로그 엔으로 바꿨다고 자랑해도 박수쳐주지 않는 답니다.

개인적인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하는 직업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공감대를 끌어오지도 못한다.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바꾼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 아키텍트로서 이루어낸 성취보다 그 재산과 사회공헌 활동이 더 주목받듯이. 이 세상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멋진 직업들에 비해 우리 직업은 언제나 초라하고, 멋지지도 않고, 인정받지도 못하고, 얼굴도 못 본 사람들에게 욕 먹는 게 일상인 직업이니까. '너희가 만든 프로그램이 너무 엉망이라 한 명이 과로로 자살했대. 그런데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야, 이렇게 만들어놓고 밥을 먹으러 갔다고? 너네 제정신이야?' '아니 여기 차관님이 오신다는데 거기 사장이 참석 안 하는 게 말이 돼요?' '아, 뭘 번거롭게 회의실에 올라가려고 그래요. 그냥 저 앞에 편의점에서 간단히 설명 들어봅시다' '진척이 느리다고 고객님이 화가 많이 나셨답니다. 릴리즈까지 개인 약속 다 취소하고 주말에도 출근하세요. 그거 알아요? 상어는 평생 지느러미를 멈추지 않는대요' '야, 너 왜 저녁을 2시간 동안 먹고 왔냐? 뭐? 집에 너무 못 들어가서 부모님이 오셨다고? 그래. 잘했다. 밥 많이 먹었으니까 힘내서 오늘 이거 다 끝내고 퇴근할 수 있겠네' 이런 소리 듣는 게 딱히 이상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니까.

개발 도구를 실행하고, 새 프로젝트를 생성하면 아무 코드도 없는 하얀 창이 뜬다. 어릴 때 그 창이 마치 빈 캔버스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나는 대세가 검은 배경으로 바뀐 지금도 하얀 배경을 고수하고 있다. 그 하얀 창에 그림을 그리듯이 알록달록한 글씨를 채워나가면, 구체적인 현실은 추상적인 논리가 되었다가 다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된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거야 라는 나의 개인적인 논리는 수학적인 주장이 되어 일초에도 수만 번씩 그 옳음을 증명해준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코드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를 바라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인생에 대해서 잘 모를 때부터 느낀 그 재미에 끌려서 내 인생을 바친 결과가 왕복 4시간을 이동하여 만들어낸 40분간의 편의점 미팅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진다. 나도 나름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았는데. 이 세상은 개발자에 대한 존중이라는 게 없는 것일까. 우리들의 자조섞인 농담들은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지 않기 위한 성숙한 방어기제가 아닐까.

그래.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지. 어떤 자격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섣부른 평가질을 정당화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려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것이, 많은 돈과 안정적인 생활보다는 재미를 추구한 것이, 사회적으로 우러러볼 만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너희의 본죄라는 그 시선에 화내고 설득하려 하기 보다는, 그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나의 인생은 다수의 기대가 그렇듯이, 봄바람에 실려 날아다니는 꽃가루처럼 결국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 채 스러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연찮게 얻어걸린 나의 코드 한 줄이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코드가 되기를, 하찮은 꽃가루 하나가 결국 장대한 숲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하찮은 꿈 정도는 꾸어볼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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