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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FTS

June 2019. 12. 20. 04:38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차를 몰고 가던 드라이버가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우버에 탄 지 20분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습니다. 아무런 대비가 되지 않았던 저는 방금 드라이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당황해 버려서 'what?'도 아니고 'um?'도 아닌 'egh...?' 정도의 웅얼거림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드라이버가 조금 더 길고 느리게 뭐라 뭐라 말을 했습니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말에서 분명한 성조를 느낄 수 있었던 저는 4년 전 중국 출장 때 외워두었던 '저는 중국어를 할 줄 모릅니다'라는 재귀적인 중국어를 떠올리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여기는 미국인데 왜 내가 중국어로 질문을 받고 중국어로 대답을 하지 못해서 힘들어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억울함이 살짝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딱히 항의는 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드라이버가 이번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물어보았습니다. 'Chinese?' 처음으로 알아듣는 단어를 들어서 반가워진 저는 반사적으로 'Sorry, I'm from South Korea'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20분 동안 저희는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우버에서 내리면서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왜 저 드라이버는 물어보지도 않고 제가 중국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캘리포니아에 중국인이 많이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동양인이 타면 물어볼 것도 없이 중국인이라고 단정할 만큼 많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혹시 제가 중국인처럼 보였을까요? 하지만 우버가 도착하기 전에 드라이버가 보낸 메시지에도 한자가 가득했습니다. 뭐야 이게 싶어서 그냥 지나친 메시지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드라이버는 제 이름만 보고 중국어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아, 이름. 아마도 그 드라이버는 제 이름을 보고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랬다면 자신의 차에 타는 동양인을 보고 역시 중국인이 맞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흔한 질문을 생략할 수도 있었겠지요. 대충 이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자주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는 일이 아니라, 물어보지도 않고 단정 짓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요. 사실 확인보다 빠른 편견은 그 소유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줍니다. 저 사람은 이럴 거야, 그건 사실 이렇게 된 거야. 너 사실 이런 생각이었지?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합해낸 합리성으로 보강한 결론은 마치 잘 짜인 추리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지적인 즐거움을 주거든요. 설령 그 합리성이 아무런 귀납이나 연역을 찾아볼 수 없는, 결론을 먼저 상상하고 그 결론에 대한 확증편향에 빠진 두뇌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논리야 놀자를 탐독하면서 자랐고, 커서는 부울 대수와 이산 수학의 공식들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대체로 논리적인 것에 세심한 편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것에 무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논리적이지 않은 소문, 미신, 편견, 주장, 코드 같은 것들에 대해서 신경 쓰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자꾸 접하면 인생이 재미 없어지거든요. 그리고 인생의 재미가 마이너스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중국인 우버 드라이버를 만났던 시점보다 조금 이전에, 한국에서 저는 꽤 화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같이 화를 냈고 제가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했습니다. 그 결과 제 인생은 달군 프라이팬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요란하게 튀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이 기화되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이런저런 일들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별로 인생에 좋은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신경했어야 할 것들에 신경을 쓰다 보니 편두통과 소화불량, 불면증, 위염, 인후염, 결막염, 구내염 같은 것들이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찾아온 손님들에게 다양한 알약을 대접하느라 미처 술 같은 것으로 영혼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 저는 약간 드라이아이스 같은 상태가 되어서 미국으로 배송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에서, 좋은 것들을 보고 들으면서 지내면 찬물에 담가 둔 양파처럼 아린 맛이 빠질 것이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꿈같은 기대였습니다. 저는 한동안 글이 너무 안 써져서 깊이 상심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글자도 못쓰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무슨 글만 쓰려고 하면 타자연습 프로그램에서 긴 글 연습을 하듯이 분당 700타로 글이 써져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쓰인 글은 대부분 평문 혹은 사르카즘으로 암호화된 형태의 욕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렇게 정신없이 뭔가를 두들기다가 문득 제가 키보드를 치는 것이 아니라 부두 인형에 칼을 꽂는 것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 했을 때는 이미 5KB 정도의 디지털 쓰레기가 만들어진 다음이었습니다. 어디에도 공개할만한 글이 아니었기에 저장 없이 에디터를 닫고 나면 결과적으로 아무 글도 안 써진 상태가 되므로, 저는 결과적으로는 글이 안 써져서 힘든 상태라고 봐도 될 것 같았습니다.

저를 화나게 했던 사람들, 그러니까 거짓, 무시, 협박, 모욕, 왜곡, 짜증, 강요 같은 태도로 저를 대했던 사람들에게 다 망해버리라고 저주하는 것은 별로 보기 좋은 일도 아니고, 사실 별로 효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고, 그 사람들은 제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거든요.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편견, 그러니까 저에 대한 생각과 결론들은 은마아파트만큼이나 좋은 자리를 일찍 차지하고 있어서, 도저히 설득이나 논리로 뒤집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던 제 미래계획과 커리어 패스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구슬 굴러 나오듯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먼저 굴러 나왔고, 결국 저는 운명론자처럼 그 미래를 위해 달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소수 의견을 말하거나 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저 그 사람들의 머릿속의 시냅스들 사이에서 전기신호가 오고 가면서 제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한 결론을 만들어냈을 뿐. 다들 아시겠지만 전기신호는 빛의 속도로 전달되기 때문에 소리보다 훨씬 빠릅니다. 효율적이죠. 소리의 전달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그리고 프라이팬, 물방울, 각종 질병, 드라이아이스, 양파, 부두 인형 등의 이야기를 지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어떻게 하면 저를 원상복구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냥 글을 뭔가 남는 것이 있을 때까지 계속 지우고 쓰다 보면 소면에서 전분이 빠지듯이 결국 불필요한 것들이 빠지고 원래의 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간 세계에 대한 환멸을 비트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변환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아니면 명상 같은 것을 배워서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까요? 왜 저는 복원 지점을 만들어두지 않아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일까요? 역시 사고는 백업이 없을 때만 골라서 터진다니까요.

그러다 문득 응당 망해야 할 것들은 아직 하나도 망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벌써 망해버린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억울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아직 제가 망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어울리는 합리적인 이유들을 빛의 속도로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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