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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비 몰로치의 저서 상품의 탄생 그리고 디자인 이야기(Where stuff comes from)에 대한 글입니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디자인은 그 상품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바라본다고 했을 때, 예술가가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학자가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공학자가 바라보는 시각은 동일 할 수 없다. 심지어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도 반드시 일치한다고 할 수 없는데, 동일한 예술가들이 같은 자동차를 바라본다고 해도 그 자동차의 구성물들간의 조화로움을 높이 평가하는 예술가가 있을 수 있고, 색상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예술가가 있을 수 있다. 즉, 디자인이라는 요소를 평가하는 기준은 객관성을 부여하기 어렵고 주관적인 시각이 많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인데, 대량 생산되는 상품의 경우 많은 숫자의 소비자들에 의해서 그 디자인이 평가되고, 그 평가는 다시 그 상품의 판매량에 영향을 준다. 동일한 계층의 사람들이 평가하는 디자인도 각기 다를 수 있는데, 다양한 계층, 인종, 나이, 성별, 국가의 소비자들에게 평가되는 디자인은 훨씬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일반적인 시각에서 ‘디자인이 좋다.’ ‘디자인이 좋지 않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좋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라는 식으로, 다수의 의견을 취합하여 그 상품을 평가할 수 도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시각이 모든 상품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전제하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어떤 제품의 성공은 사람들이 어떤 제품의 어떤 특성을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다. 라는 식의 전개이다.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시각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상품이 소비자에게 선택되어서 판매되는 과정은 그런 식으로 일반화 하기는 다소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 상품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입장을 사용자의 입장으로 일치시켜서 사용자의 시각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평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이 쓴 글은 오타나 오류를 찾기 어려운 것처럼, 자신이 최선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설계한 제품의 단점을 찾아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이미 상품을 디자인 했다는 것 자체로 일반적인 소비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작품을 사용한다고 해도, 디자이너는 평범한 소비자의 시각을 견지하기가 쉽지 않다. 사무용품 디자이너가 다른 회사에서 출시된 볼펜을 사용할 때, 일반적인 소비자들처럼 그저 잡기 편하고 잘 써지는 지만을 무의식 적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 제품의 굴곡 하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를 고민할 수 밖에 없고, 정작 그 펜을 집어 들은 이유 – 무엇인가 써야 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MP3 플레이어의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들 수 있다.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은 한국이며, 현재 발표된 한국의 MP3 플레이어들은 그 기본적인 디자인 개념이 최초의 MP3 플레이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용자는 컴퓨터에 자신의 MP3 플레이어를 연결하고, PC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음악 파일을 MP3 플레이어에 복사한다. MP3 플레이어는 이제 컴퓨터에서 연결을 끊더라도 자체적으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때문에 MP3 플레이어의 곡 검색 인터페이스가 PC의 구조를 그대로 계승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PC에서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MP3 플레이어에서도 계층구조 (폴더 구조)로 존재하는 파일들을 순차적으로 검색하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MP3플레이어의 인터페이스를 정의하는 최적의 문법이라고 모든 개발자와 소비자에게 인식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 세계 시장에서 절대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애플(Apple)사의 아이팟(iPod)의 경우 이러한 인터페이스를 채택하지 않았다. 아이팟에 저장되는 파일들은 어떤 계층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강제적으로 아이팟의 저장공간을 들여다 보면, 노래파일들은 제목조차도 없이 정말 아무렇게나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팟은 음악을 검색할 때 노래에 자체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태그 정보, 즉 곡 명과 앨범 명, 아티스트의 이름과 장르 등으로 음악을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사용자에게 목록을 제공해 준다. PC와 동일한 계층구조를 가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기존 MP3플레이어 디자이너들이 이처럼 음악의 정보를 토대로 동적으로 재정의 되는 목록을 떠올리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양 제품의 디자이너들이 지향했던 바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국내 MP3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은 P2P등을 통해서 노래 단위로 공유되는, 때문에 제목과 앨범 명들이 제대로 적혀 있지 않고 파일명을 통해서 노래 제목을 알아내야 되는 실정을 무시할 수 없었고,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자사의 뮤직스토어에서 완벽하게 정리되어 공급되는 음악파일을 주요 콘텐츠로 삼은 만큼, 음악의 정보를 통한 정렬을 마음껏 지원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상품의 평가도 첨예하게 나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아이팟의 인기는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계 시장에서의 인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정보가 정리되지 않은 파일을 다수 보유하고 있던 국내 소비자들에게, 모든 음악의 정보를 정리할 것을 요구하는 애플의 제품들은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때문에 국내 소비자 커뮤니티에서도 아이팟과 기타 MP3플레이어들의 사용자들 간의 대립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한다. “일단 정리해두면 이 보다 편할 수 없다.” “노래 하나 듣는데 그걸 시간을 들여서 정리해야 되냐”라는 의견 차이는, 결국 디자이너가 생각한 이상적인 디자인이 꼭 소비자에게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서 저자는 디자이너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어떤 정규화 되고 규격화 된 방법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좋은 디자인’을 평가하는 기준도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Good Design 상도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고, 디자인은 예술적인 측면에서 평가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정말 극도로 못 만들거나 극도로 훌륭한 작품이 아닐 경우 일반적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이를 두고 저자는 ‘누가 봐도 멋진’ 디자인이 최선의 디자인이라고 했는데, 저 멋지다는 의미는 단순히 외형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제품의 기능적인 측면, 그리고 생산적인 측면 등을 모두 고려한 의미일 것이다.

사실 디자인을 종합적인 측면이 아닌,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디자인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불가능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좋은 자동차 디자인은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두 자동차를 달려보게 함으로써 어떤 디자인이 더 좋은 디자인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의 기능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고 해서, 즉, 자동차가 정말 볼품없게 생기더라도 그 자동차 본연의 기능만 하면 상관 없다고 한다고 해서 디자인의 우열을 저렇게 단순히 측정할 수는 없다. 빠른 자동차가 좋은 디자인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 탑승자에게 정말 끔찍한 경험을 주는 불편함으로 치장되어 있다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편하다는 것과 불편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이 도널드 A. 노먼은 저서인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서 심지어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고층건물의 비상계단은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막대기 등으로 막아두어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막대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화재 등 비상상황에서 그 막대기는 당황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무작정 지하로 내려가서 건물 내에 갇혀 버리는 사람을 구해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의 출입문 수동개방 손잡이도 마찬가지다. 문을 열어야 된다. 라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문을 여는 과정은 지나치게 복잡하다. 그러나 그 복잡함과 불편함 때문에 운행하고 있는 지하철의 문이 덜컥 열려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편한 것이 무조건 좋다.’라고 주장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편함과 불편함을 가르고, 멋진 것과 멋지지 않은 것을 가리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인다. 사실 컴퓨터공학, 산업공학, 인간공학 등이 섞여있는 연구분야인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에서는 이러한 ‘편함’을 정량화된 수치로 표현하고자 하는 연구가 상당부분 존재하고 있고, 지금도 이루어 지고 있는데, 제프 래스킨의 저서인 Humane Interface에서는 이러한 연구의 예를 들어서, 이 워드프로세서에서 자신의 원하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는 작업은 이상적으로 몇 초 내에 이루어질 수 있고, 현재 이 워드프로세서의 인터페이스는 계산결과(손을 마우스로 옮기는데 몇 초, 키보드를 한 타 치는데 몇 초 하는 식의 공식이 사용된다) 몇 초가 걸리므로 더욱 개선될 여지가 있다. 라는 식의 계산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문제는 꼭 소프트웨어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상품들, 감상용으로 제조된 것이 아닌 소비자의 사용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상품들에서 이처럼 디자인을 정량화하여 우열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느냐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대부분의 상품을 사용할 때 무의식 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물론 상품을 처음 접할 때는 그 외형적인 디자인에 의해서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품을 사용할 때는 그 사용이 어지간히 불편하지 않다면 무의식 적으로 그 상품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다. 즉, 그 상품이 어떤 장신구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상품의 디자인은 그 상품이 구입된 이후에는 대부분의 사용자에게 특별히 의식되지 않는다. 심지어 명백히 불편하게 디자인된 상품을 사용하면서도 그 불편함이 상품의 사용에 중대한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사용자들은 그 불편함에도 익숙해지게 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QWERTY배열의 키보드 인데, 원래 이 배열은 의도적으로 타자 속도를 느리게 하도록 복잡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최초의 타자기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할 경우 내부적으로 기계적인 충돌이 일어나서 타자기가 멈추는 사례가 잦았고, 때문에 타자기의 디자이너들은 일반적인 영어문장을 타이핑 할 때 가장 비효율적인 디자인을 구상했고, 그 결과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키보드의 영문배열이다.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 타자기에 익숙해진 계층에게 편하도록 컴퓨터의 키보드 역시 동일한 배열을 채택하였고,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배열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물론 이러한 디자인의 비효율성을 비판하고 나선 자판 배열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영어자판에는 Dvorak(드보락) 배열이 제안되었고, 한글자판에는 세벌식 자판이 제안되었다. 이 자판배열은 명백히 기존 자판보다 효율적인 배치를 하고 있었으나, 즉, 기존 자판보다 ‘누가 봐도 멋지고 훌륭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으나 소비자들에게는 외면당했다. 책에서도 언급 되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디자인을 받아들여서 학습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자, 모든 소프트웨어들도 기존 자판 배열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새롭게 컴퓨터를 배우는 사용자들도 새롭게 개선된 자판이 아닌, 불편한 기존 자판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계층이 선택한 디자인은, 그 디자인의 ‘멋지지 않음’과는 관계 없이 소비자들에게 선택되는 디자인 이라는 것이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정의되는 디자인은 이처럼 복잡한 사회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자인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이 일치하지 않기도 하며, 형편없는 디자인의 제품이 마케팅에 성공하여 폭발적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세상을 정말 단순하게 일반화 한다면 ‘잘 팔리는 제품이 좋은 제품’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최소한 상품의 디자인에 있어서는 이러한 정의가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더욱더 일반적인 경우라면, ‘예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잘 팔리는 제품은 좋은 디자인을 가진 제품이다.’라고 일반화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소비상품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출시되고 있고, 그 형태는 유형과 무형을 가리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 디자인은 많이 팔렸으니 좋은 것’ ‘이 디자인은 많이 팔리지 않았지만 훌륭한 것’ ‘이 디자인은 좋지 않은데 많이 팔린 것’을 일일이 구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비생산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판매량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디자이너들에게 무례한 일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디자인의 가치가 각 개인에게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품의 디자인이라는 것은 어떤 수치를 통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렇다고 주관적인 평가가 공신력을 얻는 것도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주관적인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상품이라는, 대량 생산되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개체는 그 평가도 수 많을 수 밖에 없고, 그 평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의견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상품을 판매량, 혹은 정량화된 편리함, 기능적인 효율성 등으로 평가한다는 것 역시 위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시장에는 트랜드라는 것이 존재한다. 트랜드라는 것은 일시적인 유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넓은 의미로 정의하면 시장의 소비자들이 상품에 요구하는 보편적인 요구사항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물론 그 트랜드는 수시로 바뀌고, 때로는 과거로 회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소비자들 중 다수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디자인을 가진 제품이란 이처럼 다수의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가치관과 부합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물론 왼손잡이용 가위와 같은 상품은 어떻게 보면 시장에 존재하는 소비자 중 다수를 외면하고 소수에게만 적합한 상품이라고 생각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왼손잡이용 가위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소비자는 ‘전체 사람’중 소수인 왼손잡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전체 왼손잡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그 상품은 그 자체로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모든 디자이너들은 멋지고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 자신의 창조적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그 과정에서는 아마도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이 다수의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디자인일까 하는 고민이 수 없이 스쳐갈 것이다. 그리고 그 우려가 현실이 되어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제품도 분명 존재한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선택되는 디자인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떤 디자인이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되고, 선택되지 못한 디자인들이 선택된 디자인의 특성을 받아들여서 더욱 개선되어서 출시될 때, 소비시장에서의 상품 디자인은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현대 사회는 경쟁 사회이고, 경쟁은 발전을 불러오기에 긍정적이라는 시각이 있다. 디자인과 같이 얼마간은 예술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분야 역시 현대 소비시장에서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상품의 디자인은 예술작품처럼 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장은 상품의 개선을 불러오고, 상품의 개선은 시장의 성장을 불러온다. 물론 소비자들이 좋은 상품을 선택해주리라는 전제조건 하에서 말이다. 이 책에서처럼 상품과 그 상품의 디자인, 기능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품과 그 디자인의 발전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더욱 편한 생활을 약속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더 편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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