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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리는 모두.

June 2006. 12. 15. 07:12

나는 살아오면서 우리집이 그다지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에서도 우리집은 그럭저럭 잘 사는 편이었지만, 가끔 돈 걱정 전혀 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지 않은 것에 아쉬워 할 때가 있는데,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마을버스를 기다려야 할 때가 보통 그렇다. 이사오고 나서, 팜플렛에 적혀있던 지하철역에서 5분거리! 라는 말은 카레이서 기준임을 알게 되었고, 당연하게도 마을버스 기사분들은 카레이서가 아니기 때문에, 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합쳐서 15분 정도가 소모되었다.

우리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는 2종류가 있는데, 5번과 422번이 그 것 이었다. 두 버스의 노선은 물론 다르기는 다르지만,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였고, 전체 정류장의 70% 이상이 겹쳤으며, 특히나 우리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두 버스가 90% 이상 동일한 노선으로 운행하고 있던 덕분에 나는 아침이 되면, 사소한 선택권을 얻게 되었다.

정류장을 공유하는 두 버스간의 신경전은 무서운 수준이었다. 번호에서 알 수 있듯이, 후발 주자였던 422번 마을 버스는 커다란 차량과 친절한 서비스로 많은 손님을 끌어모았으고, 일종의 선발업체였던 5번 버스는 기존에 자신이 독점하던 노선에 등장한 후발 주자를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보통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버스의 노선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앞에 오는 버스를 선택하기 때문에, 두 버스의 신경전은 매우 재미있는 양상으로 발전되는데, 다른 회사 차량의 배차간격까지 고려할리는 없기 때문에, 보통 정류장에는 두 회사의 버스가 동시에 도착하게 되고, 사람들은 앞에 있는 차에 몰려들게 되고, 때문에 뒤에 있는 차는, 손님을 태우지 않기 때문에 앞에 있는 차를 앞지르게 된다. 다음 정류장에서 이 일이 반복되게 되고, 덕분에 두 버스는 정류장을 기점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이때, 뒤에 있던 차가 정류장 이외의 지점에서 앞 차를 앞지르게 되면 그 버스는 정류장 2개를 연속으로 점령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뒷 차의 박탈감은 커지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은 산 길이었다. 덧붙여서 주로 내리막길 이었다.

신호라도 걸려서 두 차가 나란히 서게 되면 승객들은 숨 소리마저 죽여가며 버스 기사가 승부를 걸 지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만약 뒤에 있던 버스가 차선을 바꿔서 앞에 가던 버스와 나란히 서기라도 하면, 승객들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게 된다. 이윽고 신호등의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 정류장쪽 차선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끼어들기를 저지하려는 시도. 내리막길임을 잊은 듯한 과감한 가속과 버스임을 잊은 듯한 과격한 코너링은 승객들을 불안에 떨게 했고, 운전자의 자존심을 지키게 해주었다.

두 버스회사간의 갈등은, 지루한 통학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과장된 망상을 하던 나에게는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실제로는 서로에 대한 어떤 견제도 없이 표면화 되지 않은 단순한 갈등일 뿐이었다. 그러나, 422번의 기사들이 요금을 받을때 무려 '인사'를 하게 되면서 부터. 5번 버스가 먼저 도착해도 뒤에 있는 422번 버스에 탑승하는 손님이 생겨나면서 부터, 그 갈등은 표면으로 드러나려는 기미가 보이게 되었다.

언제나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사소한 시도이지만, 이 때는 좀 달랐다. 두 버스 회사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것은 422번 버스 회사의 커다란 승부수에서 비롯되었다. 422번 버스는 친절하고, 넉넉한 좌석을 자랑했지만, 대단히 혼잡한 길을 통해서 지하철역에 도착한다는 단점이 있었고, 5번 버스는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대한민국 평균 키의 남자는 머리를 숙여야 될 정도로 비좁았지만 샛길을 통해서 지하철역에 도착하는 덕에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안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422번 버스가 이제부터는 자신들도 샛길을 통해서 운행하겠다고 선언을 해버린 것이었다.

모든 정류장에 안내문이 붙었고, 모든 버스에 현수막이 달렸다. 큰 길로 가든, 샛길로 가든 그 길에는 아무런 정류장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승객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버스의 옆 광고판에까지 '이제부터는 5번 버스 가는 길로 갑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것은 내가 보기에는 대단한 도발이었고, 5번 마을버스 기사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같은 길을 달리는 버스간에 갈등이 표면화 되기 시작되었다.

그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 마을버스를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별로 막히지 않았고, 버스는 쾌적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 쾌적함에 취해 있을때, 맞은편 차선에서 다른 회사 버스가 등장하였다. 쾌적한 기분은 사라지고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물론 대부분의 승객들은 무관심 했지만, 나는 이 버스기사가 지금처럼 예민한 시기에 다른 버스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그냥 지나칠까? 쓱 바라볼까? 눈길이라도 줄까? 애써 외면할까? 상대 버스에 승객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려고 할까? 입속에서 작은 욕설을 중얼거릴까?

한 손을 들었다.

하나의 손바닥이 상대를 향하는, 일반적으로 '안녕'이라는 말이 덧붙으면 매우 자연스러운, 바로 그 동작이었다. 물론 버스기사들이 맞은편에서 오는 동료들에게 자주 하는 그 동작이기도 했다. 두 버스의 회사가 다르다는 사소한 문제점만 제외한다면, 매우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상대 버스기사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두 버스는 교차하였고, 들었던 손은 내려져서 다시 핸들을 잡았다.

몇 일이 지나자 모든 안내문과 현수막은 철거되었다. 422번 버스는 원래 노선을 고수하기로 하였다. 두 버스 간의 갈등도 다시 수면속으로 들어갔다.

만약 한 버스기사가 택시기사와 싸움이 붙는다면, 다른 버스회사의 기사라고 해도, 버스기사를 옹호할 것이다. 대중교통 근로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서라면, 택시기사와 버스기사가 같이 농성할 것이다. 축구 경기가 벌어지면,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우리나라를 응원할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다면, 모든 지구인들이 지구를 지킬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행성에 살고 있다. 가끔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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