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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True Negative

June 2020. 12. 3. 15:03

저는 세상에 나쁜 책은 별로 없다는 주장에 보통 동의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을 지배하고 있는 자기 계발서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세상에 나쁜 책이 별로 없다는 말은, 실제로 나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가치는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보통 자기 계발서들은 반면교사로 삼을 만큼 비판하고 싶은 주장을 담고 있는 경우도 별로 없고, 교사로 삼을 만큼 유익한 내용이 있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기 계발서는 아주 오랫동안 국내 출판계를 지배했습니다. 언제나 서점을 가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비슷한 부류의 책들이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는 유행이 있었고, 언젠가는 힐링이 어쩌고 힘내라 어쩌고 그런 유행이 있었고, 요즘에는 일러스트가 잔뜩 들어있는 뭐든지 다 괜찮아 부류의 책들이 유행인 거 같았습니다. 저는 이런 책들의 내용 요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한 번도 자기 계발서를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저런 책들이 워낙 좋은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요즘 유행이 뭔지 관심이 없어도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 진지한 자기 계발을 위한다면 자기 계발서를 읽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별 내용 없이 그럴듯한 말로 책 한 권을 채우는 연습을 해두면, 언젠가는 아무 일도 안 하고선 그럴듯한 성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평소에 좋은 말을 많이 하면 구글 검색 결과가 잘 나온다'라든지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는 소비에트 마치를 들으면서 출근하면 힘차게 출근할 수 있다'라든지 '파프리카를 트러플 오일에 구워 먹으면 의외로 맛있다' 같은 책임지지 못할 말로 300페이지를 채우는 일은 오히려 생산적이지 않기에 쉬운 일처럼 보입니다.

물론 저는 자기 계발서를 쓰는 것보다는 개발이나 열심히 하는 것이 저에게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살면서도 그렇게 자기 계발이나 인생조언 같은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뭔가 제 경험을 기준으로 조언을 짜낸다면 '개발을 잘하려면 창의력과 수학적 사고보다는 체력과 끈기가 더 중요하다'라든지 '컴퓨터 포맷하기 전에 소스코드 다 올라갔는지 더블 체크해라' 같은 별 의미 없는 조언을 꺼낼 수는 있겠지만 이런 내용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냥 그렇다고요...'정도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시시하고 미미한 조언들이니까요. 만약 제가 회사 생활에 치킨스톡 같이 작용할 수 있는 극적인 레시피를 알고 있었다면 그걸로 부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굴소스급은 아니더라도 파기름 정도는 될 것 같은 흥미로운 행동 양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 한 명은 뭐든지 하기 싫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뭐든 열심히 참여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컨셉일까 다소 혼란스러웠는데, 몇 달을 두고 관찰한 결과 이 사람은 싫어하는 것도 진짜고 열심히 하는 것도 진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넘치도록 많이 봤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보통 본인이 부정하던 방향으로 뭔가 결정이 이루어지면 열심히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실제로는 열심히 하지 않는 케이스도 꽤 많이 봤던 것 같습니다. 뭔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열성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요. 하지만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해야 할 때는 열심히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패턴에 대해서 나름 해석해본 결론은 이렇습니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과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는 집단의 가치가 언제나 개인의 가치보다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조직의 필요'에 의해서 '개인의 사정'이 무시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에 반발하여 나타나는 개인주의 성향을 이기주의와 구분하지 못하고 개개인의 아이덴티티를 약화시키고 조직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조직의 멍청한 결정에도 구성원들이 멍청하게 따라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에 휘말려서 정신을 못 차린 구성원은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면 엉망진창이 된 경력기술서를 보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요즘은 경부 고속도로 깔던 그 시절의 방식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기에, 잘 굴러가는 조직은 군대보다는 프로 스포츠팀에 가까워야 합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집단으로써의 조직이 존재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의견이고, 그렇기에 개인에 대한 강조가 점점 힘겨워지는 조직 목표 달성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주장입니다. 저는 1년 전에 이러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했다가 회사 굴러가는 이치를 잘 모르는 애송이 취급을 공개적으로 받았던 적이 있었을 정도로 전체와 개인 중 어느 쪽이 우선이냐에 대한 논쟁은 이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전체주의의 강압에 대한 반발에서 태동했듯이, 조직의 결정에 대해 우선 반대하고 시작하는 태도가 그 조직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을 낮춰주고 개인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조직이 항상 나쁜 방향의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 여러 사람이 고민해서 나온 올바른 결정이 더 많을 확률이 높은데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반대가 집단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포인트는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집단이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들이 모든 구성원들의 일치된 마음에서 나온 결정이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보통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논쟁과 토론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들기도 하는데, 사실 이 쪽이 훨씬 정상적입니다. 특정 이익을 위해서 모이지 않은 일정 규모 이상의 어떤 집단이 의사결정이 매우 잘 이루어진다면 그 집단은 보통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집단지성과 다르게 집단사고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입니다. 어떤 집단의 의사결정이 한 명의 리더나 집단 내에 존재하는 소수의 의사결정 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이에 대해 다른 구성원들이 동질성 확보를 위해 만장일치를 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집단사고가 발생한 조직의 의사결정은 매우 빠르지만,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위험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만약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집단에서 자신이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굳이 좋은 결정을 위해서 고민하거나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설령 반대의견을 낸다고 해도 '눈치 없다'라든지 '나댄다'라는 식으로 백안시당할 위험이 크기에 생각 없이 찬성하는 쪽이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조직은 발전하기 어려워지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악마의 대변인은 가톨릭에서 성인을 추대할 때 사용하는 제도로, 주어진 안건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을 최소 한 명이상 지정해두는 제도입니다.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의사결정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는, 그 결정의 잘못된 점이나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반대로 그 의사결정을 더 완전하게 만들어줍니다. 반대를 인정하지 않는 결정보다는 반대를 인정하는 결정이 훨씬 합리적이고 공고한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결정이 허술하고 허점이 많다면 무조건적인 반대는 그 결정을 무너뜨리는 씨앗이 될 수 있기에, 허술하고 허점이 많은 결정에 무조건 찬성하는 집단사고의 위험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매사에 부정적인 행동 패턴은 그 사람이 속한 조직에 메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잉어 정도의 역할로 활력을 주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사실 제가 더 주목한 포인트는 어쩌면 여기에 '지속 가능한 회사생활'의 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주로 들었던 회사 생활을 잘하는 비법은, 주어진 일에 최대한 몰입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뭐 그런 자기 계발서에 많이 나오는 말들이었습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려다 보니 마음속의 부정적인 것들을 죽이는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일을 적당한 수준으로만 끝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일을 제대로 못 끝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일을 할 때 진심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니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몰입이 아니라 적극적인 탈몰입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우리가 왜 일을 할 때 진심을 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떤 일들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어떤 일들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고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기 싫은 일로 변환하는데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왜 옳은지에 대해서 적절한 증명을 만들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상태로 받아들이고, 그와 상관없이 해야 할 일들은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 훨씬 손실이 적은 방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지금까지 뭔가 일을 할 때 다단식 로켓을 발사하듯이 동기부여 - 환경조성 - 업무몰입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업무가 정상 궤도에 들어가기도 전에 멘탈이 먼저 터져나갈 때가 많았던 것 같은데, 그냥 싫은 건 싫은데 하는 건 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단단식 로켓처럼 안정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형태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는 당근을 얇게 써는 연습을 하면 집중력이 올라갑니다. 파나 양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는 한데, 제 경험으로는 당근이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회사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보다는 치킨을 시키는 쪽이 대체로 더 효과적입니다. 물론 선배의 조언이 치킨보다 더 도움이 될 때가 없는 것은 아닌데, 선배의 조언은 전혀 쓸모없을 때도 있는 반면 치킨은 항상 쓸모 있기 때문에 평균적으로는 치킨의 승리입니다. 자면 안 되는데 잠이 오면 카페인을 섭취하면 되고,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면 멜라토닌을 섭취하면 됩니다. 멜라토닌은 미국에서 사 오면 매우 싸게 사 올 수 있고 여섯 병까지 통관이 가능하므로 다음에 미국에 가실 일이 있으면 꼭 사 오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긍정 부정 할일 안할일 좋은거 싫은거 이리저리 변환하고 치환해가며 복잡하게 사는 것보다는 심플하게 사는 것이 아무래도 개인과 집단과 우주에 좋지 않을까가 제 결론인데, 뭔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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