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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무사한 하루를 마치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때였습니다. 쓰레기를 탈탈 털고, 손도 탈탈 턴 다음에 집에 들어가려다가 문득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오늘 정말 둥근달이 떴을까 궁금해져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봤는데 주변 건물들에 막혀서 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 앞에서 달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한 번도 달이 제대로 붙어있나 확인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살면서 달을 두 눈으로 확인한 적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살면서 달을 두 눈으로 본 적은 무수히 많았겠지만, '나는 지금 달을 봐야겠어'라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확인한 적이요. 제 기억으로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입사시험을 봤던 날, 그러니까 대충 11년도 더 전의 일이었는데 그날 시험에 '오늘 밤의 달의 모양은 무엇일지 고르시오'라는 문제가 나와서 자신 없게 풀어내고 나서는 그날 밤 집에 들어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떠 있는 달에게 답을 맞혀봤던 기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달이 없는 밤하늘은, 별빛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매우 어두웠습니다. 독일의 천문학자인 올베르스는 무한한 우주에 무한한 수의 별이 있다면 밤하늘의 모든 지점에 별빛이 있어야 하므로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말이 안 되는데, 왜 우리가 보는 밤하늘이 어두운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했었고 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천문학자가 고생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간의 확장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느니, 빅뱅 우주론이나 관측 가능한 우주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왜 밤하늘이 어두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도시가 새벽에도 지치지 않고 번쩍거리며 밤하늘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으니 밤하늘은 시리우스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 보일 수밖에요.

저는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번잡한 지역에서만 살아와서 사실 '쏟아질 듯한 별빛' 같은 것은 게임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무상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감상하기 좋았을 퇴근길은 잠실, 삼성동, 거제, 대치동, 둔산동, 광화문, 소공동 같은 번잡한 지역에서도 특히나 더 번잡한 동네들이었기에 별빛과 함께 퇴근하는 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흐릿한 밤하늘을 열심히 뒤져봐야 겨우 가장 밝은 별 한두 개 정도만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소공동이나 광화문에서 매일같이 날짜변경선을 한강쯤에 그리며 퇴근하던 흐릿한 시절의 저는 제 미래가 그 하나의 별빛처럼 찬란할 것이라고 믿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좀 힘들고 고될지라도 모내기하듯이 밝은 미래에 대한 복선, 티저, 전주 같은 것을 여기저기에 깔아 두면 10년쯤 뒤에는 잘 익은 미래를 추수해서 배부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습니다. 정말 막연한 기대였는데 왜인지 몰라도 자신감이 초신성처럼 터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막상 지금은 다시 10년 뒤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기대감이 백생왜성같이 쪼그라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꽤나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습니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막연히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착각이나 근거 없이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릴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알 듯 말 듯 한 느낌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일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중간의 미지근한 어딘가에서 그냥 그저 그렇게 흘러갑니다. 인생의 극적인 이벤트들은 점점 사라지고, 가끔 있는 일들에 대한 해석도 점점 지루해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크게 기뻐하거나, 크게 즐겁거나, 크게 화나거나, 크게 슬프거나 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를 두고 '어른스러워진다'라고 해석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게 그렇게 당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별로 재미가 없어진 우리들은 세상의 주인공 롤에서 벗어나서 점점 모든 것에 기계적이고 무던하게 반응하는 NPC가 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일까요?

사실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달은 항상 그 자리에 떠있을 겁니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나 손을 뻗으면 별빛에 닿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지난 수십억 년간 이 사실이 바뀐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 뭔가 이것저것 많이 생겨서 잘 안 보이는 것뿐이겠지요. 제가 잠실에 일하러 처음 왔을 때 40층쯤 올라갔던 건물이 지금은 123층이 되어 주변 별빛을 다 가리고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아닌 우리는 굳이 보지 않아도 오늘 밤의 달이 무슨 모양인지 알 수도 있고,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믿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재미없어 보이는 것들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 수도, 여전히 기쁘고 슬픈 것들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의식하고 노력해야만 되는 것들로 변해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역할을 연습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전에 시리우스를 바라보며 막연히 나는 엄청나게 잘될 거라고 생각했던 제 믿음은 지금쯤 시리우스를 스윙바이 하여 별빛을 타고 다시 저에게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박한 바람이지만, 10년쯤 뒤에 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건, 지금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무언가에 좌절하고 있더라도 그 별빛이 저를 비추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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