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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일상생활의 러다이트

June 2021. 1. 23. 02:02

재작년,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꾸기 직전 가을 무렵의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왜 미국인들은 샌드위치에 채소를 넣어서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데리야끼 소스를 뿌린 치킨 샌드위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미국 동료가 저에게 뭔가를 물어봤습니다. 신선함과 아삭함이 부족한 식단이 한 달 넘게 계속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저는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테이블의 대화에는 별로 집중하지 않고 있었기에 질문을 놓치고는 음.. 미안한데 뭐라고?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네가 가장 좋아하는 픽사 영화가 뭐냐'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대비 없이 반사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인사이드 아웃이 제일 좋던데?'라고.

대화를 조금 더 나누어 보니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토이 스토리 시리즈나 월 E를 좋아했고, 인사이드 아웃은 무척이나 의외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왜 픽사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니까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자기소개에서 픽사 좋아한다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라서 물어봤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라고 생각해보니 아마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스타크래프트, 라스트 오브 어스, 비트 세이버, 마시멜로, 마데온, 체인 스모커스, 마틴 게릭스, 루소 형제, 크리스토퍼 놀란 등과 함께 픽사도 포함시켰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 그래 픽사가 최고다. 픽사 영화 다 엄청 좋아한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한 명이 저에게 '여기 바로 옆 사무실이 픽사인 거 알아?'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당연히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좁은 스미스 타워의 10층에는 우리 회사와 픽사 2개의 사무실만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마다 픽사 간판과 캐릭터 인형들이 가득한 사무실이 보였는 걸요. 그래서 물론 안다고 했더니 '우리가 좀 친한데, 가서 구경하고 이야기해볼래?'라고 제안하는 겁니다.

순간 얼어붙은 저는 밀려오는 부담감에 '아니 괜찮아'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곧 대화는 다른 주제로 흘러들어 갔고 저는 치킨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내가 혹시 엄청 좋은 기회를 놓친 게 아닐까에 대해서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주제에 대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과 인사하고 대화하는 게 무척 부담스러워서 반사적으로 거절하고 말았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옆에 픽사 직원들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고, 설령 대화가 잘 안 통해도 가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제 인생에 후회할 일은 무척 많이 생겼기에 이 후회는 오래가지 않고 곧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어제,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한창 바꾸고 있던 겨울의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6달 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저는 잊어버렸던 후회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무조건 가서 구경하고 픽사 엔지니어들한테 좋은 영화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아무리 후회한다고 해도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어제 영화 '소울'을 보기 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정보는 '픽사'와 '신작' 딱 2가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룩소 주니어가 영화의 시작을 알릴 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만, 영화가 끝나고 감독의 이름이 올라올 때는 영화에 압도당해서 살짝 멍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감독 이름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업'과 '인사이드 아웃'을 만든 감독이었던 겁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자기 소개할 일이 있으면 크리스토퍼 놀란 옆에 피트 닥터의 이름을 같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엔딩 크레딧을 뒤로하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어느정도 경지에 올라가야 이런 창작이 가능할까.

사실 저는 픽사 영화들을 좋아하고 신작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어떤 영화가 디즈니고 어떤 영화가 픽사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기대감이 조금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여전히 픽사 영화들은 좋은 영화였지만 뭔가 예상 가능한 수준의 좋음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그 예상을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기존 영화들의 장점들을 잘 모아서 잘 발전시킨 수준이 아니라 뭔가 넘을 수 없는 벽을 넘은 수준의 그래픽, 음악, 연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면서 (스포일러 방지)가 (스포일러 방지)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름다운 감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저에게는 경이로운 창작의 결과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경이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었을 당시의 픽사 사무실을 방문해보지 않았던 것을 깊이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알고리즘과 프로그램이 단순 반복 작업의 영역에서 인간들의 일자리를 잠식해나갔던 것처럼 인공지능의 돌연한 발전이 결과적으로는 창작의 영역에서 인간들을 대신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여주는 인공지능의 창작능력은 기존 인간의 창작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 하는 수준의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인간의 창작과 인공지능의 창작을 구분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들은 사람들의 취향을 알아맞추는 것을 넘어서서 취향을 한쪽으로 유도하는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으니, 어느 순간에는 추천 리스트에 인공지능의 창작물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취향을 저격하는 콘텐츠들이 나중엔 AI가 만들어낸 콘텐츠들을 좋아하는 취향으로 유도하는 수준이 되지는 않을까라고요. 우리의 취향이 경사 하강하여 어느 순간 멈추게 된다면,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인간의 창작과 인공지능의 창작을 구분하지 못할 수도, 굳이 구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게 10년 이내 일지 100년 이내 일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소울을 보고 나오면서 저는 그게 그렇게 빠른 미래의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혼 없는 AI가 소울 같은 작품을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설령 지금의 인류가 이미 AI의 콘텐츠에 중독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빨간약이 되어 사람들을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결국 만나지 못한 픽사 엔지니어들은 AI가 잠식해나가는 플랫폼 세상의 레지스탕스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한참 하면서 극장 지하에 있던 마트에 방문했습니다. 마트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는데, 저번에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사는 것을 깜빡했던 것입니다. 폐점을 한 시간 남긴 마트는 생각보다는 한산했고 저는 재빠르게 쓰레기봉투를 찾으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대형 마트에서 쓰레기봉투를 사는 것은 처음이라, 어디에서 살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직감적으로 청소, 주방, 일회용품 코너를 뒤져봤지만 쓰레기봉투는 없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문의하려고 했는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찾으러 마트를 두 바퀴 도는 동안 직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계산대에는 직원이 있었지만 다가가서 뭔가 물어보기 힘들었고, 폐점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물건을 정리하거나 카트를 정리하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판촉행사 등을 하는 직원들도 없었고요. 대신 여기저기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를 외치는 태블릿들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비어있는 태블릿을 이리저리 건드려서 쓰레기봉투의 위치를 찾으려던 저는, 이 태블릿이 그냥 매장 지도를 표시해주는 기능 외에는 별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깊이 실망했습니다. 뭔가 검색 버튼 같은 게 없을까 뒤져보다가 검색 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는 다시 한 바퀴를 더 돌면서 인간 직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애꿎은 태블릿만 다시 건드리면서 뭔가 내가 놓친 게 없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형편없는 디자인 때문에 스크롤 영역 아래에 가려져있던 챗봇을 발견하고는 순간 두근거림을 느꼈습니다. 내가 찾던 것은 품목명으로 위치를 찾는 검색창이었지만, 발견한 것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인공지능이었던 것입니다. 아, 이거면 안내 직원을 배치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어서 챗봇에게 개발자 다운 간결함을 담은 질문을 했습니다. '쓰레기' 그러자 인공지능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내가 너무 인공지능을 검색창 다루듯이 했을까에 대해서 반성하면서 다시 물어봤습니다. '종량제 봉투' 그러자 챗봇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순간 뭔가 싸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 챗봇의 뒤에는 신경망이 아니라 IF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저는 챗봇에 '종량제 봉투 어디'라고 입력했고, 드디어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봉투는 문구 코너에 있어요!'

그래. 이 챗봇은 한국어의 다양한 어미변화를 고려하기보다는 그냥 문장에 '어디'가 있는지를 먼저 검색하고 그 앞에 있는 단어를 인식했구나. 그러면 '맛있는 김치 어디 있어?'같은 질문에도 '김치는 신선코너에 있어요!'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저는 이 정도 수준을 가진 챗봇의 대답에 만족하면서 문구 코너를 방문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콘텐츠에 빠져서 잠을 못 이루는 것보다도 바보 같은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완전히 실망하여 다시 한번 종량제 봉투를 찾으러 마트를 한 바퀴 돌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마트를 반 바퀴쯤 돌아 문구 코너에 도착했을 때, 저는 뭔가를 기록하면서 진열대에서 바코드를 열심히 찍고 있는 인간 직원을 드디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달려가서 종량제 봉투의 위치를 물었고, 종량제 봉투는 계산대 옆 기둥에서 찾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고는 무척 만족하며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문득 그 챗봇이 사실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위치와 동선, 저의 질문과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문구 코너로 가라고 한 것은 아닐까 살짝 무서워졌지만, 아직은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는 세상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평정을 되찾고 계산대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종량제 봉투 두 묶음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할인을 받기 위해 강제로 깔아야 했던 마트 앱과 매장 태블릿에 설치되어 있던 챗봇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봤습니다. 마트 앱을 열었더니 만보계 기능을 위해서 권한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도대체 어떤 반지성주의적인 프로세스와 반창조적인 역량, 그리고 집단사고에 가득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이런 기획가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은행 앱에 배달음식 주문 기능이 들어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랑 비슷한 불쾌함이었습니다.

혹시 똑똑한 사람들이 자꾸 이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시나 현장에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술이 우리의 일자리를 잠식해가고, 기업이 이익을 독점하는 미래에 반항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 파괴 운동은 아닐까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세상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비웃으며 대충 일하는 사람들로 양극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불쾌한 마음을 달래러 스포티파이 앱을 켜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스포티파이에는 퇴근하면서 들었던 'Daily Mix 1' 재생목록이 걸려있었고, 매일매일 제가 좋아하는 혹은 좋아할 음악들로 가득 채워주는 이 재생목록은 역시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이런 음악들을 좋아했지? 이게 1년 내내 이런 음악들만 들을 정도로 그렇게 좋아하는 장르였나?

미국에 도착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지 유심을 이용해서 미국 핸드폰 번호를 받는 것이었고, 그다음으로 한 일은 그 번호로 본인인증을 하고 미국 구글 계정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미국 구글 계정으로 미국 페이팔 계정을 만들었고, 이 페이팔 계정을 이용해서 제가 한국에서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도 불가능했던 스포티파이 프리미엄 계정 가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지내던 기간 동안 마시멜로, 마데온, 체인 스모커스, 마틴 게릭스 등의 음악을 열심히 찾아서 들었더니 이내 스포티파이는 제가 많이 들었던 음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재생목록을 만들어서 추천해주기 시작했고 그 추천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저는 1년 넘게 계속 스포티파이의 추천 재생목록을 들으면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했습니다.

순간 이건 좀 아니다는 생각에 음악 재생을 꺼버렸습니다. 이 요망한 앱이 감히 내 취향을 유도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스포티파이가 추측한 나의 취향과 가장 반대되는, 알고리즘에 혼란을 줄만한 취향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했습니다. 그래서 락 발라드 같은거라도 찾아서 들어야 하나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던 저는, 아무래도 그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하던 시절, 그러니까 20년쯤 전에 좋아했던 파괴적인 음악들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 음악들이 스포티파이의 야심 찬 시도를 깨부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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