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에세이

Last man standing

June 2013. 11. 16. 04:38

제가 신입사원때는 신입사원은 원래 일을 많이 받는 것인가 고민하던 시기가 잠깐 있었어요. 에어컨이 냉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환기의 의무만 수행하기로 결심한지 4시간이 넘은 한 여름의 사무실은 정말 더웠고, 그래서인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단순 반복 코드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하는 속도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일을 못 해서 남아있는 것인가 일을 잘 해서 남아있는 것인가 고민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지요. 근처에 다른 신입사원들이 있었으면 너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니 라고 물어봤을텐데 아쉽게도 물어볼 사람들은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 혹은 일이 없어서 집에 먼저 간 상태였어요.

 

저기 뒤에 있는 저 분한테 한 번 물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무실에는 저만 있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제 등 뒤에 있는 자리에 앉아 계셔서 뒤를 돌기 전에는 볼 수 없었지만 - 실은 파티션으로 막혀 있어서 뒤를 돌아도 볼 수 없었겠지만 잠시 키보드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이어폰을 빼면 뒤에서 들리는 자그마한 키보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알 수 있었죠. 아 저 분 아직도 퇴근 안 하셨구나. 하지만 프로젝트에 들어온지 2달이 넘도록 그 분과는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밤 11시에 불쑥 찾아가서 처음으로 거는 말이 '혹시 일 잘 하시나요 못 하시나요'라는 상황은 서로에게 어색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이어폰을 꼽고 일을 하기 시작했죠.

 

사실 사무실에는 자리마다 명패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분의 회사, 직급, 이름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분의 직급이 수석, 그러니까 저 보다 한 단계 두 단계 세 단계 네 단계는 더 윗 직급이시라는 점과 3년쯤 뒤에는 기억도 하지 못할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 그리고 그 분이 요즘 편한 마음이 아니겠구나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물론 공공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사무실에서는 자기 명패에다가 오늘 기분을 이모티콘 스티커 같은 걸로 붙여놓는 귀여운 짓은 절대 하지 않지만 - 하면 혼나겠지만 - 그 분이 속해있는 회사가 요즘 많이 어렵다는 소식이 이 바닥에서는 꽤 유명했거든요.

 

그로부터 딱 1년 전이었어요. 어쩌다보니 한 여름에 졸업을 하게 된 저는 가을쯤에는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했고, 열심히 제가 갈 수 있는 회사들에 프로포즈를 하기 시작했어요. 3년 전 부터 이 회사를 짝사랑 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아서 제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회사들은 저를 만나보지도 않고 차버렸지요. 쿨 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우울해하고 있을 때 딱 한 회사가 우리 일단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답을 주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 회사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거든요. 지원할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어쩌냐고 하면 별로 할 말은 없었는데, 저 그 회사 원서는 정말 그냥 써본거고 원서 제출하고 자려고 누우면서 - 살짝 울면서 - 내가 학교 공부 영어 공부 열심히 안 했더니 이 회사도 지원서를 내는구나 이 회사가 내 마음속의 커트라인이구나 만약에 딴데 다 떨어지고 여기만 붙으면 가야되나? 그런 고민을 하다 잠든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다 떨어지고 거기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거에요. 평생 면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일단 보기는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입사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는 붙고 나서 고민을 하자. 라고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취업 시장에서 패배하고 낙오된 주제에 회사를 갈까 말까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게 차라리 떨어졌으면 하는 - 부모님이 알았으면 엄청나게 혼났을 -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자꾸 붙더라구요. 필기 시험을 봤더니 붙고 기술 면접을 봤더니 붙고 어느새 최종 면접만 통과하면 최종 합격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최종 면접에 뭔가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면접을 보면서도 여기를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를 머리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할 때 면접이 끝나고 임원 중 한 분이 물어봤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순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죠. '저...그런데 정말로 윈도우 만들고 있는것 맞나요..?'

 

결국 그 회사와는 인연이 되지 않았고, 저는 반 년을 더 쉬고 다시 취업에 도전해서 다행히도 성공하고는 다음 해 겨울에 첫 월급을 받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해 여름에 한참 야근을 하면서 내가 만약 그 때 입사를 했다면 지금 저 수석님 옆에 앉아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면 누군가 나를 보면서 '어휴 요새 회사가 많이 어렵다던데 월급을 꼬박꼬박 나오나요?'라고 동정해주지는 않았을까 고민을 했어요. 그런 말은 듣기 싫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결국 그 날도 그 수석님과는 말 한마디 안하고 계속 키보드 소리만 나누었어요.

 

그 때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의 막차가 12시 8분에 있어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저는 12시가 되기 전에는 사무실을 나가야 됐어요. 저는 야근한 다음에 택시타고 집에 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서로 말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수석님의 집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보다는 막차 시간이 훨씬 뒤였던 것 같아요. 항상 제가 먼저 집에 갔거든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어요. 내가 최후의 2인까지는 쉽게 가는데 왜 가장 늦게 집에 가는 - 불 다끄고 보안일지에 서명하고 문 잠그고 경비 아저씨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 영광을 누리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정말 뛰어가야만 간신히 막차를 탈 수 있을 시간까지 버텨보기도 했었는데 미동도 안하시더라구요. 물론 그 수석님도 가끔은 야근 안하고 퇴근하기는 하셨지만 저는 밤 늦게까지 둘만 남았을 때 이기고 싶었어요. 저는 사실 제일 잘 하는 사람 보다는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최후의 1인이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더라구요.

 

전 날 야근을 했다고 다음 날 늦게 출근해도 된다는 룰은 없었기 때문에 매우 피곤해하면서 출근을 했던 어느 날 이었어요.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선배가 신문기사를 보다가 어? 하는 소리를 내시는 거에요. 그래서 무슨 기사길래..하고 쳐다봤다가 숨이 막힐 뻔 했어요. 결국엔 그 회사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했더라구요. '아 여기 결국 워크아웃...'까지 말했다가 제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말을 줄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죠. 다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결국 저렇게 되는구나. 밀린 월급은 나올까. 그럼 만들던 그거는 다 버리는 건가. 저 회사에 잘하는 사람 많았는데 어떻게 되려나. 수석님은 어쩌지.

 

그 날 저녁, 저는 그토록 바라던 최후의 1인이 될 수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쭉 계속 얼마든지 최후의 1인이 될 수 있었어요. 뭐 비극적으로 그 분이 프로젝트에서 나가거나 하신 건 아닌데 더 이상 야근을 안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12시는 고사하고 11시 정도만 되도 다들 퇴근한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아서 이어폰 안 끼고 스피커로 음악 들으면서 야근을 할 수 있었어요. 솔직히 별로 기대했던 것 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역변수 Apocalypse  (0) 2015.03.28
당신의 생각이 알고 싶어  (1) 2014.03.18
Last man standing  (0) 2013.11.16
근로자의 날  (0) 2013.05.20
private war  (0) 2013.04.15
失速 (Stall)  (0) 2013.03.09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