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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양보

June 2013. 3. 8. 03:26

1

 

아침이었다. 출근을 하려고 집에서 나올 때면 온통 깜깜해서 내가 무척 부지런 한 것 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온통 환해서 내가 지금 주말에 느지막히 출근하는 것인지 아침에 부지런히 출근하는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던 그런 아침이었다. 견디기 힘들 것 같던 추위와 꼭 아파트 단지 입구에만 가면 미친듯이 불던 바람은 추억이 되었고, 지하철역 까지 뛰어야 될 것 같은데 차마 뛰지 못하게 만들었던 얼어붙은 바닥도 녹아서 흔적만 남긴, 그런 늦은 겨울의 출근길 이었다.

 

한 번도 버스를 타고 출근한 적은 없었기에, 지난 3년간 늘 그랬던 것 처럼 지하철 역에 카드를 찍고 들어갔다. 카드를 찍으면서 얼핏 이번 달에 쓴 교통비가 스쳐지나갔고, 그걸 보면서 벌써 이번 달도 중간이 넘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지 말라고 경고가 기계적으로 울려퍼지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가면서 지하철이 제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딱 맞춰서 도착하기를 기대했다. 지하철들의 현재 위치를 알리는 전광판이 보이는 순간, 마침 인천행 열차가 당역에 접근중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조금만 더 힘내면 오늘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계단을 다시 뛰어 올라갔다. 내려올때는 에스컬레이터고 올라갈때는 계단이라니 조금 억울했지만 이 지하철을 놓치면 출근길이 대책없이 꼬여버릴 것 같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뛰어 올라갔다.

 

지하철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열차를 탔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꽤 많이 보였고, 그 중에는 꽤 매력적인 자리도 많았지만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려야 되기에 앉을 수가 없었다. 문득 학교에 다닐때는 딱 이 시간에 저 자리에 앉으면 편안하게, 9시 수업까지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3년이 훌쩍 넘긴 옛날 이야기고, 앞으로 내가 인천방향으로 다시 출근이든 통학이든 할 일이 생기기나 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놀러 가지도 않았는데.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나서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사람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라니. 더군다나 뭔가 사람들이 좀 어수선하게 많다는 느낌도 있었다. 여기가 사람 많기로 유명한 역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알아서 사람들이 밀어주고 당겨줘서 자동으로 환승된다는 평가가 있던 그런 곳인데, 지금은 가만히 서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가지고 핀볼을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뚫고 지하철로의 환승을 위해 지하로 내려가자, 무언가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역은 플랫폼 하나가 폐쇄되었습니다.' 왜? '너무 혼잡해서 공사를 해야 되거든요.' 언제까지? '내년까지요' 올해는 이제 시작인데? 그렇지 않아도 사람 많아서 미어터지던 여기가 공사까지 한다고? 무언가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 날 아침의 신도림역에서 그런 기분을 느낀건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2

 

전쟁같은 출근길을 감수하고 나서야 회사에 도착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출근길의 전쟁이 사방에 있는 사람들과의 공간 싸움이었다면, 회사에서의 전쟁은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이슈들과의 국지전이었다. 간신히 막고 막고 또 막아도 이슈는 지치지도 않고 터져나왔고,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게 되었다. 이슈는 기본적으로 터지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이슈가 터진 것을 간신히 봉합해봐야 결국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일 뿐, 일이 진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순간 이슈가 잠잠해지면 그제서야 애초에 목표했던 결과를 향해 전면전을 시도할 수 있었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느릿느릿 진격하다 보면 다시금 이슈들이 터져나와서 만싱창이가 된다.

 

대놓고 짜증을 낼 수야 없지만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목표했던 거리까지가 100km 라면, 주어진 자원도 딱 100km 까지 갈 만큼이었다. 중간에 자꾸 멈추고 길이 틀어지고 후진하고 차가 뒤집어지는 상황을 감안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시작부터 끝까지 쭉 달렸어야 간신히 목표에 맞출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럴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외국에는 기름 1리터로 100km를 가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각종 회사들이 일종의 기술력 과시를 위해 서로 경쟁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1리터로 100km를 가는 자동차가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매우 감탄스럽고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자 이제 너도 1리터를 줄테니 100km를 가봐라. 라고 하면 매우 황당하고 짜증나고 불쾌한 이야기가 되버린다. '그 자동차들은 배터리를 완충한 상태에서 달리는 전기자동차 들인데요?'라고 항변해봐야 들어줄 턱이 없다. 애초에 그 사람들은 1리터로 100km를 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부터, 그걸 결론으로 삼고 그럼 1,000km를 가려면 10리터만 있으면 되겠네? 라고 답을 정해놓은 사람들일테니까.

 

사실 1리터로 100km를 가라고만 했어도 별로 짜증날 것은 없었다. 그건 일종의 도전이니까. 해야될 일이 이렇게 많고 만들어야 될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더라도 내가 얼마나 효율좋은 사람인지 과시할 수 있는 일종의 기회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화낼 사람은 별로 없었고, 같이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였다. 이슈들이 터져나와서 하는 일들을 방해해도, 모두들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넘어서서 오버클러킹을 해야만, 애프터 버너를 써야만 목표에 아슬아슬하게 도달할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사실 그렇게 짜증날 일은 아니었다. 그건 그냥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터져서 힘든 것이지 짜증날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정말 대놓고 짜증을 낼 수야 없었지만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해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목표를 향해 도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억울한 경우가 있을까 싶었다. 방해꾼들이 차라리 적이었으면 적개심에 불타올라서 우리 스스로 효율을 높였을지도 모른다. 방해꾼들이 차라리 경쟁자였으면 호승심에 불타올라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 앞에 지뢰를 깔아놓고 표지판을 뒤집어 놓고 길을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니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

 

어릴 때는, 때려놓고 나서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야'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른의 나이가 되어서 생각해보면, 역시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가 진정 잘 되기를 바란다면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훨씬 이롭지 않을까 싶었다. 그 때 그 어른들은 때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었던 것은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1,600미터 달리기를 위해서 트랙을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한테, '너 세계기록 경신하려면 3번째 바퀴 얼마나 더 빨리 뛰어야 될지 알아야 되니까 지금 2번째 바퀴 랩타임 기록해서 너 평소 기록이랑 비교한 다음에 그 차이를 말해줘. 3번째 바퀴 100m 지점에서 말해줘.'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 선수를 잘 되라고 하는게 아니라 그 선수에게 달리기도 하면서 동시에 머리도 쓰라는 소리가 되고 - 어차피 달리는데 머리는 필요 없으니까? - 그래서 달리기에 집중 못하게 하고 결국 기록만 떨어뜨리는 그런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정말로 빨리 달리기 위한 지시가 아니라, 코치들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 아는 수준에서 막 던지는 말이라면, 그건 결국 어린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이나 다를게 없다. 자기가 어른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줄 능력이 안 되니까 어린 아이들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점유하고 자랑하려는 것이나 다를게 없다는 소리다.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계는 설계고, 개발은 개발이고, 테스트는 테스트다. 설계가 잘못되어 있으면 설계를 다시 하면 되는거고, 개발이 어려우면 물어봐서 해결하면 되는거고, 테스트 해서 결함이 나오면 결함을 고치면 되는거다. 어떤 방법론으로 개발을 진행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고, 구성원 모두가 똑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정말 거의 없다. 프로그램을 완성시킨다는 그 비전만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금은 여기서 부터 가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을 완성시킨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주어진 시간 안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게 다 좋은 프로그램 만들라고 그러는거야'라고 이야기하면서 회초리를 휘두르는데, 어릴때나 지금이나 맞으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보다는 반항심 먼저 생기는 것을 보니 아직 덜 컸나 보다.

 

4

 

모기처럼 달려드는 이슈들을 간신히 뿌리치고 오늘도 1미터 전진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조금 전진할만 하다 싶을 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오후 11시 10분. 퇴근하려면 지금 퇴근해야 된다. 그래야 신도림에서 막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 퇴근 못하면 결국 택시를 타거나, 신도림역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된다. 날이 조금 덜 추워졌다고는 해도 한 겨울 밤에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길을 30분 넘게 걸어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결국 '오늘은 여기까지'를 외치며 퇴근했다. 이 세상의 모든 야근은 필요악이 아니라 그냥 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그나마 야근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딱 하나는 퇴근길이 보람에 가득차 있을 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니까 오늘 야근도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가끔 무언가 잘못되서 일찍 퇴근할 때면 아침만큼은 아니더라도 불쾌함을 느끼기에 충분할만큼 사람들로 가득차있던 2호선 지하철도 11시가 넘어가면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앉을 자리가 듬성듬성 있었다. 회사가 역삼이나 강남에 있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자리에 구겨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신도림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오늘도 하루가 신도림 역에서 끝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1호선에 갈아타기 위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역 곳곳에 공사를 알리는 간판들이 보였다. 아침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잘 보지 못했던 것들인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잘 보였고, 여전히 내년까지 아침마다 이 지옥이 계속되리라는 절망적인 정보만 전달해줬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야 되는 공사니까. 이 공사 시작하기 전에도 신도림역은 지옥이거나 지옥 비슷한 그 무언가였다. 그걸 개선하겠다고 여기저기서 공사를 계속 했었고, 이번 공사는 그 규모가 조금 더 컸을 뿐이다. 설령 공사가 다 끝난다고 해도 천국이 될리야 없겠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2014년의 나는 여전히 이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할 텐데, 그 때의 나는 공사하니까 한결 낫다고 좋아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야 2014년의 나를 위해서 2013년의 내가 조금 더 양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고 그냥 꾹 참고 더 나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감수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냥 이 모든게 다 조금 더 나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감수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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