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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False Positive

June 2020. 12. 10. 02:33

상상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시대입니다. 원하는 것은 뭐든 빠르고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구할 수 있는 시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상상력을 자극하는'이라는 말이 별로 칭찬의 수사가 되지 못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국내 검색엔진 점유율을 찾아봤을 때, 유튜브의 비율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높아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유튜브가 검색엔진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면 언젠가는 HTML이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끔찍한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저는 문자로 된 정보가 훨씬 습득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영상으로 된 정보가 훨씬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게임의 막히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Walkthrough 영상을 찾아보거나, 상품의 색상이나 구성품이 궁금해서 리뷰 영상을 찾아보거나 하는 일도 검색의 일부이니까 저도 은연중에 유튜브를 검색 엔진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는 점점 더 입체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문자화 된 결과가 그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문자나 그림으로 된 정보들은 어쨌든 시간의 흐름을 상상에 의존하게 되는데, 한 차원 더 높은 영상 정보는 그런 상상력이 필요 없으니 훨씬 더 편하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런 흐름은 UCC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UCC라는 말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될 때까지 꾸준히 가속하면서 이어진 흐름이기 때문에, 컨텐츠들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히 최근 소설 시장은 완전히 박살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PC통신 시절에는 하이텔의 창작 연재(Serial) 게시판이나 나우누리의 SF 게시판 등 창작 소설이 연재될 수 있는 공간이 많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도서 시장, 그리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여점들이 많이 살아있었기에 소설이 매우 경쟁력 있는 컨텐츠였지만, 영상이 검색 결과로까지 소모되는 시대에는 소설이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소설 시장은 박살이 나기는커녕 지금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나 웹 소설 분야는 국내 IT 회사들의 지형도를 바꿀 정도로 성장했고, 아직도 잠재력이 많은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PC통신 시절 활발하던 창작 소설 컨텐츠 공유가 인터넷이 등장하고 PC통신이 쇠퇴하면서 은근슬쩍 사라져 가던 시대를 목격하고 그 뒤로 관심을 끊었기 때문에 최근 웹 소설 시장이 그렇게나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상상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장의 상황은 정반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조금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인기 있는, 그러니까 돈이 되는 창작물들이 유행을 타고 비슷한 주제나 설정으로 많이 나오는 것이야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최근 유행하는 웹 소설들은 장르를 넘어서서 형식 자체가 기존 소설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순수 문학을 접하면서 자란 사람들이 장르 문학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것처럼, 장르 문학을 주로 접하면서 자란 제가 최근의 웹 소설들에 생경함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요즘 소설들은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으로 짧게 짧게 끊어서 읽는, 마치 웹툰과 같은 소비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화 한 화의 기승전결이 매우 중요하고, 독자들이 하루에 아주 잠깐 읽고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다음 내용을 궁금해해서 결제를 하도록 유도해야하는 시장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먼치킨이어야 하고, 고난, 역경, 갈등 같은 독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최소화하거나 아니면 그날 공개된 내용 내에서 해소가 되어야 하며, 극복보다는 어떻게 나쁜 놈들을 최대한 나쁘게 묘사하면서도 이를 주인공이 시원하게 쓸어버릴까에 집중하는 사이다패스 성향을 가지는 것이 요즘 독자들의 상황이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인기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웹 소설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고요.

저는 이런 흐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순수한 주제의식을 담는 것과 상업적인 수요에 대응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어떤 예술분야에나 오랫동안 존재했던 첨예한 대립이고 심지어 저는 개발을 할때도 수학적인 완결성과 공학적인 생산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 소설의 수요가 급증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시 상상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단편소설보다도 더 단편적인 측면에서만 컨텐츠를 이해하고 싶어 하고, 방대한 설정이나 숨겨진 주제 등을 찾거나 상상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최소한 그런 사람들이 다수이니 소설 시장의 전체적인 성장세와 다르게 단행본 판매량은 급락하는 결과가 나타났을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상상하는데 사용할 에너지를 아껴서 어디에 쓰고 있는 것일까요? 소모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줄여서 생산적인 활동에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생산력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그 원인은 너무나 복합적이기에 '사람들이 소설 읽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여서 업무 생산성을 늘리는 데 사용했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신 저는 지난 10여 년간 급격히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는 분야에 주목했는데, 그 결과 제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소설 읽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줄여서 그 일부를 각종 커뮤니티에서 서로 까는 데 사용하고 있다'였습니다. 계속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주 오래전에는 호환, 마마, 전쟁 등이 이 사회의 위험요소였고, 초기 커뮤니티들은 친목질이 주요한 멸망 원인이었지만, 최근 커뮤니티들은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 집단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은 커뮤니티들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클래스에 맞는 커뮤니티를 찾아서 정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구성원들이 강한 동질성을 원하게 되고, 이를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잉여 에너지를 발산할 제물들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전체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에 공공의 적을 만들어서 사회를 통합시키던 것처럼, 충분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해서 불면에 시달리는 듯이 본인들의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어떤 실수를 한 사람들을 까고 난도질하면서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 대가로 개인적인 정의감을 충족시키고 만족하면서 숙면에 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잘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 사이의 가치 충돌이 자주 보였던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최근에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열심히 일하고 월급 모아서 뭐하냐 그럴 시간에 /[비트코인|주식|부동산|금|ETF]*/ 사서 투자해라 저거 봐라 요즘 현금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월급은 아무 의미 없다 그러다가 너 늙어서 후회한다 이런 소리를 광역으로 뿌리며 어그로를 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뭐, 수단과 방법이 어떻든 간에 잘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의 인생이 있는 것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열심히 사는 사람의 인생이 있는 것인데 최근 몇 년 동안 몇몇 자산이 극적인 수익률을 보이면서 성공한 투자자들이 투자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세태가 심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의 정의는 많은 자산이고, 그 사람들의 제물은 적은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저는 그런 가치관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고, 보편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주장들은 익명성 뒤에서 일종의 자랑과 과시의 형태로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회의 보편적인 감정과 이해가 존재한다는 가정이 있었기에 누가 너는 왜 아파트 안 사고 입출금이 자유로운 통장에 여태 받은 월급을 모아 두고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차분하게 제가 보기보다 큰 지출을 잘 안 하는 편이기도 하고, 나름의 계획에 맞추어서 저축도 잘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N년치 월급(N <11)을 모아서 서울에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광합성만 하고 살지 않는 이상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설명을 드릴 수 있었지만, 무슨 소리냐 남들은 다 부모님 도움을 받아서 미리미리 사서 벌써 몇 억씩 벌었는데 너는 뭐 하고 있었냐 네 인생 실패한 거다 라며 바보 취급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차분히 대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통계학적으로 저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화를 내는 편인데, 올해에만 비슷한 이유로 각기 다른 사람에게 세 번 화를 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잘 사는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사람을 무시하는 행태가 점점 이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서글퍼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진짜로 슬픈 것은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가 일종의 낭만주의적 성향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보스를 깨려면 레벨 노가다를 해야 하고, 소설이나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배경 설명, 복선, 갈등, 상황 전개를 맞이해야 하며,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치밀한 고민과 시도와 실패를 감당하는 것이 당연할 줄 알았는데 레일 슈터가 가장 잘 팔리는 게임이 돼버렸고, 소설과 영화의 플롯은 클라이맥스에서 시작해서 클라이맥스로 끝나야 하고, 지루한 이해의 과정을 생략하고 이게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결과물을 최대한 빨리 내놓는 것이 실력이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제 각자의 낭만을 충족하기 위해서, 사이드 퀘스트를 찾아다니고, 봤던 소설이나 영화를 다시 보고, 초과 근무를 감당하거나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을 뿐입니다.

어쨌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현실성 없이 산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조금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열심히 살아갈 힘을 점점 잃게 되고, 힘을 잃게 되면 삶을 가속하기 보다는 살아오던 관성으로 움직이는 처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보이저 2호처럼 이룰 것을 다 이룬 위치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입장에서는 표류하는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와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 무게감과 그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법의 가속력이 곱해지면 이야기의 힘이 되어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움직이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는 내가 어제 했던 충동구매에 스토리를 담아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방향성은 있지만 제자리 걸음이었던 인생을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거대한 것까지 다양한 활용을 기대하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들이 가지는 힘이 미약해 보이더라도 지속력이 있기에 이온엔진처럼 우리를 지치지 않고 밀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주어진 업무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신체적으로 힘들었다기 보다는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일을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계속 싸우는 것이 살짝 힘들었습니다. 이 불안감은 심지어 일을 시간 내에 끝내서 무사히 릴리즈를 마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아서, 내가 일을 제대로 끝낸 것이 맞나 대형 사고 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워서 유튜브로 이리 저리 영상을 찾아보다가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매달렸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원작자가 몇 년 전에 강연을 했던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영상을 한참 보다가 잠에 들었는데, 꿈속에서 원작자가 나오더니 저에게 '내가 만든 오픈소스를 그렇게 하찮은 방식으로 쓰면 안 되지!'라며 엄청 꾸짖는 겁니다. 그래서 으아아아 잘못했어요 제가 실력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저에게 제이의 계책을 알려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라며 용서를 빌다가 잠에서 깬 기억이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서 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을 버리지 못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하루 정도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레퍼런스 문서를 완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하루 종일 문서를 읽었고, 놀랍게도 저는 제가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되는대로 했던 일이 많았고, 그래서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버그가 엄청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그가 표면화되기 전에 수정해서 큰 사고가 터지기 전에 막아내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베를린 방향으로 큰 절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소소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저를 계속 움직이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별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의미없는 일을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뭐든 중간만 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런다고 어디서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어차피 지나고 나면 다 아무것도 아니다 괜히 다른 사람들 힘 빠지게 나대지 말아라'라는 식의 조언을 가장한 비아냥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나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점점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에 하나씩 화를 내기 시작하면 일 년에 화내는 숫자가 지수적으로 증가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그런 말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저에게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은 어떤 결과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상상할 만큼의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뭔가 진심이라는 것들이 심정지 당한 듯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사실은 가짜지만 겉보기에 그럴듯한 인생관과 거기에서 파생된 인생의 조언들은 별로 낭만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어 보여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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