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에세이

스윙바이

June 2018. 7. 28. 03:32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생각의 흐름 사이에 작은 댐 하나가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흘러가던 생각이 멈추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면 시야가 넓어지고 주변의 적막함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노트북을 식히던 팬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가 식어버린 커피를 데우는 모습, 대충 쳐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거리, 주인을 떠나보낸 의자들과 꺼져있는 수많은 스크린들이 사무실을 고요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키보드의 키 하나를 툭 쳐보면 짧고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곧 다시 조용해집니다. 낮이었다면 많은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겠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소리여서 다들 자신이 들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나쳤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밤은 한 번의 키보드 소리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넓은 사무실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인내를 가진 사람은 그 대가로 특별한 자유를 얻습니다. 시끄러운 기계식 키보드를 마음껏 두드려도 되고, 풀리지 않는 버그에 육성으로 소리 내서 욕해도 상관없고, 지루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일어나서 춤을 춰도 됩니다. 물론 2시간에 한 번씩 사무실 순찰을 도는 분들을 조심해야 하기는 하겠지만요. 다른 사람들이 각자 정한 규율이나 도덕, 예의, 매너, 에티켓 등을 신경 쓰지 않고 나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자유가 맞습니다. 우리가 변수 이름 하나 내 마음대로 짓지 못하는 엄격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자유의 시간이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점을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꾸고 쿼터뷰나 탑뷰 정도로 카메라를 이동해서 나를 바라보면 자유로워졌다고 좋아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감방에 갇힌 죄수들이 두 평의 자유를 얻었다고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무언가의 의무에 묶여서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부터 격리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라도 자신의 의지로 그곳에서 나갈 수 있는데 사무실 문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나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 자유보다는 구속에 가깝습니다. 누가 나를 여기에 묶어두었는지 고민해보면 결국 떠오르는 얼굴은 제 얼굴이라 아무도 탓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자책 속에서 괴로워할수만은 없습니다. 내 마음이 스스로 쳐놓은 벽이 나를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면 그 벽을 빨리 허물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생각의 흐름이 끊길 때면 '오늘은 이것만 성공하고 가야지'를 다짐하며 가상의 문을 두드립니다. 오늘 이걸 다 하고 퇴근하면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한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나의 근원이 너이듯이, 행복의 근원은 불행이다. 라는 말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불행에서 행복이 샘솟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배타적으로 성립하는 개념은 그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겠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잔뜩 가지고 야근하고 있는 오늘을 불행하다고 정의한다면, 해결된 문제를 되새기면서 출근하는 내일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처럼요. 눈치 빠른 혹은 눈치 없는 누군가는 그건 행복한 게 아니라 덜 불행한 게 아니냐고 지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저는 지금 불행한 게 아니라 덜 행복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시니컬한 누군가는 그냥 미지근한 상태가 아니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네요.

뜨거웠던 과거에는 엄두도 못 냈을 행동을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에 해버렸습니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다 마셔버린 겁니다. 제가 영화 마션(Martian)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감자에 싹이 나던 장면이 아니라 리치 퍼넬이 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는 당장 This is America를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각성하여 기가막힌 스윙바이 경로를 만들어내는 장면인데,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에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천천히 음미하는 맛과 향보다는 그 순수한 카페인의 기능성에 집중하는 본질적인 매력이요. 그리고 남은 커피를 다 마셔버리는 행동은 이제 앞으로 커피가 필요한 순간이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선고이자 자신감의 표현이지요. 각성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남은 문제를 다 해결하고 당당하게 자유를 찾아 떠나겠다는 결연한 의지요.

하지만 남은 문제들은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도통 보여주지를 않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험난하기보다는 몽환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목적지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집중하기 어려웠다는 말입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을 붙잡으러 뛰어나가다 보면 불현듯 이게 맞는 길인가 싶은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 불안감이 정신적으로는 다리를 느리게 하고 물리적으로는 손가락을 느리게 만듭니다. 잘 되든 안 되든 자신감을 가지고 시도를 해봐야 집에 가거나 다른 방법을 찾거나 할 텐데. 멍청하게 말이죠.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나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지 못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 하거나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참 고민하다 보면 내 인생은 왜 이럴까라는 근원적인 고민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고민들은 정말 중력과도 같아서 나를 단단하게 서있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추락하게 만들기도 하네요.

"날 수도 있어요. 떨어지지 않으면 알 수 없죠."라는 대사를 책에서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나를 가두고 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다면 그 바깥에는 진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한 번 뛰어내릴 용기를 가지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그냥 지금 바로 퇴근해버린다고 내 인생이 망할까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퇴근이라면 식어버린 커피를 마신 김에 세상의 복잡한 모든 문제를 다 지워버리고 퇴근 하나에 집중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남은 커피도 남은 용기도 없는 지금은 그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에 급급해질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운 일인 것 같습니다.

조용한 사무실은 혼자 쓰기에는 너무 넓어서 키보드 소리에 메아리를 실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의 타이핑에 대한 반향이라도 들렸다면 지금 느끼고 있는 고립감이 조금이나마 사라질까 하는 고민에도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내일이 되면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사무실도 시끌벅적 해질 테니 굳이 답을 찾을 필요는 없겠지요. 저는 그저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저희는 항상 변하지 않는 것과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을 구분합니다. 쉽게 말하면 클래스와 인스턴스를 구분한다고 할 수 있고, 어렵게 말하면 각자의 변하지 않는 가치관과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인생의 한 단면을 구분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의 순간은 그 사람의 인생을 거쳐서 형성된 틀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의 과거는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이기 때문에 모든 순간에는 좋은 것들과 좋지 않은 것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할 때 마음 한쪽에 느껴지는 불안감이나 절망의 순간에 느끼는 희망, 격리된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니 순간순간에 충실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복잡한 심정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복잡한 마음으로 복잡한 코드를 바라보면 자신감이 벚꽃처럼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신 나는 이 문제를 절대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단풍처럼 퍼져나갑니다. 더 나아가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결국엔 잘 안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마음을 타들어 가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엔 다 잘 될 거야'라는 하얀 거짓말로 까맣게 타들어 간 마음을 채워가며 괜찮은 척을 하기도 하지요.

실제로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하면 인지 부조화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다시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 건설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코드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로 생각이 바뀌고 그것을 의식한 순간 생각의 흐름이 잠시 멈추게 됩니다. 사무실의 고요함이 저를 무섭게 감싸기 시작하고 이 이야기는 재귀적으로 반복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떤 특정한 날이나 기억을 되살려서 쓰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난 몇 년간 반복되었던 기억들을 돌이켜보고 그때의 공통된 감정을 추려내어 그 마음의 튀어나온 부분들에 잉크를 칠해서 찍어낸 콜라그래피라고 할 수도 있고, 마음의 구멍 난 부분을 통해 찍어낸 스텐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논리적인 로직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래머라기보다는 세상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개발자에 가깝게 성장한 저는 무언가를 시스템화고 추상화하는 일에 매우 익숙한데, 여러 기억에서 느껴진 공통된 마음을 포착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익숙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인생의 순간들도 무한히 쌓여갑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평균도 변해갑니다. 지나온 시간이 너무 많기에 하루 이틀의 노력이나 단순한 결심, 작은 마음의 변화로는 사람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변화의 방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시간을 타고 날아가는 인생이 행복한 순간들을 스윙바이 하여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복잡한 계획을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복잡한 계획을 세우고자 하는 시도는 근본적인 질문을 먼저 던집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  (0) 2018.08.12
Build, Pray, Run  (0) 2018.08.06
가짜 심장의 진심  (1) 2018.07.27
참는 것과 남는 것  (0) 2018.07.27
올림, 내림, 반올림  (0) 2018.07.26
댓글